지난달 말 스페인 남부 말라가를 찾았다. 지중해 유명 휴양지 중 하나인 이곳은 화가 피카소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말라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인천을 출발해 이스탄불을 경유, 다시 말라가까지 비행시간만 19시간이 넘게 걸렸다. 말라가는 온화한 날씨와 로마 시대 유적, 자연을 품은 도로가 어우러져 신차를 체험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말라가 도착 이튿날 긴 여정 끝에 드디어 메르세데스-벤츠 'GLB'를 만났다. 벤츠 콤팩트카 라인업에 8번째로 추가된 완전 신차다. 이미 7대의 콤팩트카를 보유한 벤츠가 또 한 대의 신차를 추가로 개발한 것은 이 시장이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벤츠는 지난 한 해 60만대 이상의 콤팩트카를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며 성장을 가속했다.
시승 출발지인 말라가 공항에서 GLB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본격 시승에 나섰다. GLB는 기존 벤츠 콤팩트카와 다른 분명한 캐릭터를 지녔다. 콤팩트카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장점을 결합해 최대 7명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 SUV란 점을 가장 큰 가치로 내세웠다. 동급 최대 수준 실내 공간을 바탕으로 5개의 좌석 외에 3열 2개의 좌석을 추가한 7인승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 부담스럽지 않은 차체에 고성능과 고품질, 여유로운 공간을 원하는 30·40대 가장이 주요 타깃이다.
주차장에 세워진 GLB는 콤팩트카치곤 커다란 덩치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차체는 전체적으로 네모반듯하게 각진 형태로 터프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쭉 뻗은 직선에 적재적소에 절제된 곡선을 넣어 부드러움도 살려냈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측면 유리창, 범퍼 하단 플레이트 등에 알루미늄과 크롬을 덧대 벤츠다운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강조했다.
실내에 앉아보니 벤츠의 설명대로 공간이 압도적이다. 1열과 2열에 어디에 앉아도 머리나 무릎 공간 모두 상위 차종을 타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실제 GLB 휠베이스는 2829㎜로 기존 B클래스보다 100㎜ 더 길다. 3열은 체구가 작은 어른이나 어린이가 타기에 적합하다. 3열은 신장 168cm 탑승자까지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한다. 5인승 기준 기본 트렁크 공간은 560ℓ 수준이다.
첫 시승차는 GLB 라인업 디젤 최상위 트림인 220d 4MATIC이다. 2.0ℓ 4기통 직렬 디젤 엔진에 8G-DCT 듀얼 클러치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최고출력은 190마력, 최대토크는 400Nm에 이른다. 디젤 모델임에도 소음이나 진동이 크지 않아 장시간 시승에도 피로감이 적었다. 정숙한 탓인지 타이어 쪽에서 올라오는 노면 소음은 크게 느껴졌다.
한 시간을 달려 첫 시승 목적지 엔듀로 파크 안달루시아에 도착했다. 콤팩트 SUV지만 오프로드까지 달릴 수 있다는 벤츠의 자신감을 반영한 시승 코스다. 오프로드를 위한 시승차로 바꿔타고 코스 주행에 나섰다. 시승차는 벤츠의 사륜구동 시스템 4MATIC과 오프로드 엔지니어링 패키지를 적용한 덕분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경사로와 움푹 팬 웅덩이 등을 손쉽게 통과했다.
오프로드 주행 모드로 바꾸면 차량이 구동력과 ABS 제어를 돕는다. 경사도와 기울기를 비롯한 차량 전후좌우 상황을 실내 디스플레이에서 확인해 코스를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다운힐 속도 조절(DSR) 시스템을 켜면 속력이 2~18㎞/h로 자동 조절돼 가파른 언덕길에서 차량이 스스로 제어력을 유지했다.
다시 110㎞ 떨어진 마르벨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해안도로가 절경을 이루는 코스다. 급격한 코너에 도로 폭이 좁아 가속과 감속을 반복했는데 차량은 뛰어난 반응성을 보여줬다. 220d 4MATIC 최대토크는 엔진 회전수 1600rpm부터 2600rpm까지 꾸준한 힘을 발휘했다. 차체가 다소 높지만 정교한 핸들링 성능으로 흔들림이 없이 굽이진 산길을 질주했다.
이튿날 아침 한국으로 출발을 앞두고 다시 시승차를 바꿨다. GLB 고성능 버전인 메르세데스-AMG GLB 35다. 범퍼와 그릴, 휠 등의 디자인을 더 공격적 모습으로 꾸며 역동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AMG가 만진 모델답게 주행 감성은 스포츠카를 닮았다. AMG 2.0 직렬 4기통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은 306마력의 출력을 바탕으로 정지 상태에서 5.2초 만에 100㎞/h 도달한다. 다양한 주행 모드도 제공한다. 슬리퍼리,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인디비주얼까지 총 5개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컴포트 모드에선 일반 차량처럼 안락했고,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엔진 힘을 끝까지 뽑아내듯 강렬한 힘으로 질주했다. 배기음도 커져 운전의 재미가 극대화됐다.
이틀 동안 체험한 GLB는 가족을 위한 차량을 1대 밖에 선택할 수 없는 가장에게 적합해 보이는 콤팩트카였다. 작은 차체에도 넓은 공간을 갖춰 최대 7명이 탈 수 있고, 레저 활동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GLB 가격은 미정이며 내년 한국에서도 GLB를 만나볼 수 있다.
말라가(스페인)=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