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억달러(약 76조원). 2016년 9월 정보기술(IT) 역사상 최대 인수합병(M&A)이 이뤄졌다. 델과 EMC가 합쳐져 '델 테크놀로지스'라는 IT 공룡이 탄생했다.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피인수 기업인 EMC 대표가 델 테크놀로지스 대표직에 올랐다. 김경진 한국 델 테크놀로지스 총괄사장이다.
김 사장은 델과 EMC 합병 과정을 한가운데서 지켜봤다. 인수합병 안착에는 각 사업과 인력을 고려한 정교한 준비가 있었다. 가시적인 성과는 이미 드러나고 있다. 전년도 연매출은 913억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서버 점유율은 2016년 18.44%에서 지난해 4분기 34.24%까지 급성장했다.
대담=김인순 SW융합산업부장
◇지난해 이맘때 합병이 완료됐다. 델 테크놀로지스를 소개한다면
'델 테크놀로지스'라는 이름이 지어진 지 법적으로 3년 됐다. 합병 회사명을 델 테크놀로지스로 하고 지난해 12월 2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재상장했다.
회사 브랜드가 델 테크놀로지스로 공식화된 게 1년 밖에 안 됐다. 우리나라 돈으로 110조원 정도 되는 큰 회사다. 토털 IT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에 부합하는 브랜딩과 포지션을 구축하기 위해 공들인다. 한국 시장에서 델 테크놀로지스라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길 원한다.
◇합병에 관한 감회와 성과는 어떤가
EMC에 있던 사람으로서 감회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인수회사 대표였다. 합병 당시 IT 인프라 시장에서 위상, 기술 폭과 깊이 측면에서 등 EMC가 우월한 부분도 많았다. 다만 델 테크놀로지스는 '인수' '피인수'라는 표현보다 '합병' '두 개 기술 회사 간 결합'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델과 EMC 합병처럼 거대한 프로세스가 발생하면 모두 무섭고 두렵다. 양사는 합병팀을 꾸렸다. 양사가 동등하게 고위직 임원으로 구성했다. 통합 절차 설계와 내부 소통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양사가 가진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통합에 따른 각종 혼란,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사 최고 브레인이 모였다. 거대한 회사 통합에 계획을 세우고, 실제 이뤄지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당시 합병팀에서 분과 하나를 맡았다. 자본 논리에 따라 누가 주도권이 있고 없고를 떠나 진짜 새로운 회사가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일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절차 설계뿐만 아니라 실전 연습을 포함한 실행 과정도 진행했다.
통합 조직이 실제 잘 운용될 수 있는지, 문제와 빠진 건 없는지 등을 매우 자세하게 문서화하고 검토했다. 총평하자면 역사상 가장 큰 IT 기업 간 통합이었고 가장 성공적인 통합이었다. 통합 회사 매출은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 성장률보다 빠르다. 양사가 가진 포트폴리오가 겹치는 게 없었다. 포트폴리오 폭 역시 비교할 회사가 없다. 서버 매출은 지난 2년 반 동안 매년 30% 이상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시장 위상과 브랜드 이미지도 바뀐 것 같다. 고객 반응은
델 테크놀로지스로 상장한 후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됐다. 델 테크놀로지스하면 떠오르는 브랜딩을 내부에서 계속 논의하고 있다.
델은 컨슈머 상품이 강하고 EMC는 B2B 전문이다. EMC 기술은 데이터센터 등 IT전문가에는 쉬운 이야기지만, 일반 대중에는 어렵다. 델 테크놀로지스가 되며 좀 더 일반 대중과 가까운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려 한다. 우수한 제품과 기술, 지원을 내세운다. 세계 시장에선 델 테크놀로지스가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 브랜딩과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델 테크놀로지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강점이 있다면
좋은 인재가 델 테크놀로지스에 입사하고 싶게 만들려고 한다. 일하는 환경, 내부 문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등 델 테크놀로지스 장점을 알리고 싶다.
최근 2030년 비전을 발표했다. 10년 내 전체 임직원 반을 여성으로 구성한다. 마이클 델 회장은 지금까지 이런 약속을 다 지켰다. 지금도 1년에 3~4번 '마크(MARC)'라는 교육을 받는다. 진짜 변화를 지지하는 다수(매니 애드보케이팅 리얼 체인지)를 줄인 말로, 차별 금지와 다양성 존중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1년에 8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코스를 수여하고 이사, 상무 등 인사 담당자를 교육한다. 성별, 인종, 언어, 문화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만 보라는 게 핵심이다. 구체적인 행동 지침, 써야 할 용어 등을 연습을 통해 느끼게 한다.
지구 환경 보호도 2030년 미션이다. PC 하나 만드는 데 지구 자원을 1만큼 썼다면 동등한 양만큼 자원을 재활용, 지구로 환원하는 계획이다. IT 제품 하나를 제조·공급하는 데 있어 지구 자원에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다.
◇엔드투엔드 제품 공급자가 됐다. 장점은
델 테크놀로지스는 통합 IT솔루션 공급회사다. 예를 들면 백화점보단 편집숍에 가깝다. 백화점은 골라주진 않지만 편집숍은 코디네이션을 한다. 양복으로 치자면 구두부터 넥타이, 속옷까지 다 맞춰주는 거다. 고객에 맞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델 테크놀로지스는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있다. 엮어서 섬유를 짜는 것처럼 고객에게 최적화한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다.
포트폴리오를 많이 갖고 있긴 쉽다. 의미 있게 엮는 건 델 테크놀로지스가 한다. 최근 가장 신경 쓰는 건 '탄주'다. VM웨어에서 새로 발표한 프레임워크다. 컨테이너 애플리케이션(앱) 환경이 멀티 클라우드 상에서 개발되고 사용되는 시대다. 개발 환경과 기술, 언어까지 포함해 앱 전체 사이클을 관리한다. 앱이 멀티 클라우드 상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관리 레이어다. 이제는 앱을 얼마나 빨리 개발할 수 있느냐가 기업 경쟁력이다. 수천개가 넘는 앱을 제대로 관리하는게 핵심이다. 기존 온프라미스 환경과 멀티 클라우드도 연결해야 한다.
탄주는 컨테이너화된 앱을 멀티 클라우드에서 만들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전 사이클을 자동화한다.
◇합병 후 국내 성과를 꼽는다면
양사 조직과 물리적인 부분까지 통합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2년 반 사업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서버 시장점유율은 2배가량 증가했다. 어떤 업체에서도 2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2배까지 성장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둔 건 치열하게 합병 프로세스를 준비했던 덕이다. 두 번째는 최고 효율을 낼 수 있는 객관적 지표에 따라서 통합 조직을 새로 만든 것이다. 기존 고객이 통합에 따른 불편 등을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기존에 지원하던 프로세스를 변동 없이 시장에 전달했다. 합병 후 과거 일부 제품만 보던 고객이 비슷한 서비스 수준에 새로운 제품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전체 패키지를 구매하는 고객이 증가했다. 국내 대기업 다수는 델 테크놀로지스로부터 전체 엔드투엔드 솔루션을 구매한다.
◇내년 비즈니스 계획과 포부는
델 테크놀로지스라는 신생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안착하는데 노력하겠다. 일반 소비자 시장부터 B2B까지 친숙한 브랜드로 안착하는데 집중한다.
우리나라는 IT 선진국이지만 글로벌 클라우드 트랜드는 뒤쳐졌다. 고객과 함께 세계적인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포부다. 우리나라 경쟁력은 데이터에서 나온다. 데이터라는 금맥을 사장시키기는 너무 아깝다. 데이터는 21세기 원유다. 20세기는 오일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데이터로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데이터 생성과 분석, 가치 창출하기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 데이터라는 원유를 사이클로 보면, 현재는 땔감으로 쓰는 수준이다. 실제로 데이터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김경진 한국 델 테크놀로지스 총괄사장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1년 한국 항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1994년 한국실리콘그래픽스(SGI) 마케팅 본부장을 거쳐 2001년 한국 EMC에 통합마케팅 본부장 겸 영업담당 전무로 합류했다. 2003년 한국 EMC 대표이사 사장, 2008년 EMC 본사 부사장, 2010년 EMC 본사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6년 델 EMC 본사 수석부사장 겸 델 EMC 한국 엔터프라이즈 비즈니스 총괄 사장, 2019년 델 테크놀로지스 한국 총괄 사장 겸 본사 수석부사장을 맡고 있다. 2015년 EMC 본사 리더십 서밋에서 '가장 신뢰받는 리더' 어워드를 수상했다.
정리=오다인기자 ohdain@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