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정상조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학 전공이지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서울대에 '기술과법센터'라는 융합연구센터를 만들어 센터장도 맡았다. 대한민국 최고 법조인 양성소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도 역임한 법학 전문가지만 기술에 관심이 많다.
정 교수는 법조인이 신기술, 혁신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은 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가하면, 기술을 보다 발전시키는 근간을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기술혁신을 위축시키는 것도 법”이라며 기술과 법의 밀접함을 설명했다
정 교수 설명처럼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규제샌드박스, '타다' 사태를 촉발시킨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적기조례 등은 '좋든 싫든' 기술과 법의 관계를 보여준다. 어느 시대건 법조인은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과학기술자도 법률 조언을 받는 기술과 법의 융합 환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법조인이자, 미래 법조인을 양성하는 정 교수가 기술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유기도 하다.
정 교수는 “학부 졸업 이후 저작권법을 접하면서 호기심과 열정을 불태웠다”고 회상했다. 1986년 한미통상협상 결과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 제정됐다. 당시 지도교수를 도와 영국과 미국 판례를 공부하고 법안 초안을 만들면서 저작권법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됐다.
정 교수는 저작권법이 소설이나 음악, 그림뿐만 아니라 컴퓨터프로그램이나 디자인도 보호하는 법이라는데 초점을 맞췄다. 법학공부를 하면서도 컴퓨터와 인터넷에 관심을 가졌고, 영국·미국처럼 우리도 기술과법센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2003년 서울대 기술과법센터를 설립했다.
이달 초에는 이상민·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자신문과 함께 '인공지능(AI) 산업발전을 위한 저작권 법령 개선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일본은 AI에 의한 데이터분석이 저작권 침해가 아니고 적법한 저작물 이용이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저작권법을 개정했다”면서 “토론회에서 정부, 업계, 학계 전문가가 한데 모여 저작권법 과제를 점검하고 법개정 필요성을 공감한 것이 가장 커다란 소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저작권법의 해석상 불명확성이 AI 산업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각종 저작권단체와 인터넷기업 등 이용자와 함께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AI 산업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해에는 법과 기술 융합연구와 함께 학생들과 로봇에 관한 법제도를 연구할 생각이다. 법과 기술 융합연구를 위한 전도사, 법조계와 정부·기업 간 가교 역할에도 힘을 쓸 계획이다.
정 교수는 “구텐베르그가 활자인쇄술을 발전시킨 이후 출판시장이 급성장하고 저작권법이 탄생했다. 저작권법뿐 아니라 민법과 형법을 비롯한 모든 법이 기술 변화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기업은 법조인과 연구개발팀, 경영진이 함께 모여 토론한다”면서 “정부도 법과 기술의 융합연구를 보다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