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승패병가지상사

[기자수첩]승패병가지상사

한 해의 끝자락이다. 여럿이 만나는 자리에서 올 한 해 사업 성과를 묻곤 한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올해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둡다. “유난히 혹독한 한 해” “지난해보다 실적이 역성장했다”는 답변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올해 실적이 저조한 기업에서는 연말 정기인사에서 같은 라인의 임원 여러 명이 동시에 옷을 벗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사업 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상대적으로 온화한 날씨, 급변하는 사업 트렌드, 불황에 지갑을 닫은 소비자, 히트 상품 부재와 같은 변수에 실적이 갈렸다. 특히 계절가전에 포트폴리오가 편중된 제조사와 전문 유통점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에어컨, 공기청정기 호조에 따른 품귀 현상으로 시달린 지난해와는 정반대 양상이다. 반면에 가전렌털업계는 구독경제 흐름을 제대로 탔다. 매 분기 실적 경신에 기분 좋은 한 해였다. 이들은 더 공격적인 새해 사업 계획을 잡고 있다.

시장 트렌드는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업계 성패가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이다. 업계 반응과 실적이 말해주듯 실제 국내 기업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하다. 국내 대표 주요 그룹이 연이어 비상경영을 선포하는 상황이다.

최근 만난 한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이 예측 불가능한 수준으로 빠르게 바뀌고, 판매 경쟁은 치열한데 수익성까지 악화됐다”면서 “내년이라고 이렇다 할 타개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승패병가지상사'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군인에게 이기고 지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다. 한 번의 승패에 안주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향후 대책에 집중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고서에서는 패배로 낙심한 장군에게 왕이 위로의 의미로 인용하곤 한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실적 호조와 악화는 기업에 당연히 반복되는 이슈다.

곧 새해다. 올해 성공이 내년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위기에서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걱정하기보다는 대안, 대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 산업은 늘 어려움 속에서도 답을 찾아 왔다. 새해에도 그럴 것이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