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으로 긴 무채색 차체. 크롬으로 뒤덮은 커다란 그릴과 보닛 위로 봉긋 솟아오른 엠블럼.'
과거 고급차는 위엄을 최대 가치로 내세웠다. 점잖고 엄숙한 디자인 탓에 정장을 입고 타야 할 것만 같았다.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한 해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한 고급차 브랜드들의 생존 전략이라 볼 수 있다.
2015년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PSA그룹 고급 브랜드 DS오토모빌의 두 번째 야심작 DS 3 크로스백은 정장보단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뻔하지 않은 고급차다. B세그먼트(소형) 차체 크기에도 플래그십 모델과 동일한 수준의 고급 소재와 디테일한 마감, 첨단기능을 두루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이달 국내 판매를 시작한 DS 3 크로스백을 시승했다.
먼저 외관을 살폈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존재감 넘치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전면은 조각처럼 다듬은 라인과 LED 램프의 화려한 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측면 디자인은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모양을 형상화한 B필러가 독특하다. 평소 감춰져 있는 플러시 피팅 도어핸들은 키를 소지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손잡이가 튀어나와 문을 열 수 있다. 주행 시 도어핸들을 감춰 공기저항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후면은 가로로 긴 램프와 크롬 장식으로 우아함을 강조했다.
DS 브랜드 고유의 빛을 활용한 디테일도 주목된다. 3개의 LED 모듈과 매트릭스 빔 모듈을 탑재한 매트릭스 LED 비전 램프는 야간에 넓은 시야를 확보한다. 각 LED 프로젝터는 독립적으로 각도와 광량을 조절해준다.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를 형상화한 주간주행등(DRL)도 갖췄다. DS 3 크로스백은 PSA그룹 새로운 플랫폼 CMP를 활용해 넓은 전폭과 큰 휠로 안정적 비율을 완성했다. 차체는 전장 4120㎜, 전폭 1770㎜, 전고 1550㎜에 휠베이스 2560㎜로 현대차 투싼보다 약간 작고, 베뉴보다 조금 크다.
실내는 화려하게 꾸몄다. DS 엠블럼을 주요 디자인 요소로 활용해 섬세한 디테일을 보여준다. 다이아몬드 형태로 설계한 센터패시아와 조작 버튼, 에어컨 송풍구는 이 차의 독창성을 나타낸다. 펄 스티치, 워치스트랩 패턴으로 마감한 나파 가죽시트는 촉감이 부드럽고 앉았을 때 편안하다. 끌루드파리 기요셰 장식 크롬 버튼 등 프랑스 명품에서 영감을 얻은 디테일도 독특하다.
계기판이나 디스플레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모두 디지털 방식이다. 7인치 계기판과 함께 상단에 자리한 HUD가 주행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은 물론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도 사용할 수 있다. 프랑스 오디오 브랜드 포칼이 이 차량을 위해 개발한 전용 오디오 시스템은 몰입감 높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12개 스피커와 서브우퍼를 대시보드 중앙과 A필러, B필러 등 곳곳에 배치했다.
시동을 걸면 1.5ℓ Blue HDi 디젤 엔진이 깨어난다. 두꺼운 도어 패널과 차음 유리 등을 적용해 디젤 엔진치곤 상당히 정숙한 편이다. 최고출력은 131마력, 최대토크는 31.0kg.m로 공차중량 1295kg 차량을 끌기에 무난한 스펙이다.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부드럽고 경쾌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주행 모드는 표준, 스포츠, 절전 세 가지를 제공하는데 일반 시내 주행에선 표준이 적합했다. 고속으로 달릴 땐 빠른 가속 반응을 보이는 스포츠로 주행하는 게 편했다.
유럽인 취향을 받은 프랑스 자동차답게 주행 밸런스는 훌륭하다. 운전자 의도대로 정확하게 라인을 그리는 핸들링 감각이 인상적이다.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암 방식 서스펜션은 방지턱과 같은 요철을 부드럽게 넘는다. 코너에선 흔들림 없이 차체를 잘 잡아준다. 타이어는 215/55R18 사이즈로 미쉐린 제품을 장착해 그립감을 높였다. 브레이크 제동력도 무난하다.
외곽 도로에선 주행보조장치를 사용해봤다. 모든 트림에 기본 적용한 DS 드라이브는 스톱 앤 고 기능을 포함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하면 차선중앙유지, 차선유지보조 기능이 더해져 발을 쓰지 않고 반자율주행이 가능했다. 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않지만 장거리 주행에 피로감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장치는 30㎞/h 이상부터 활성화돼 최대 180㎞/h까지 사용할 수 있다. 위급 시 자동제동장치인 액티브 세이프티 브레이크와 능동형 차선 이탈 경고, 사각지대 보조 등과 같은 장비도 모든 트림에 동일하게 장착했다.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연비였다. 도심과 자동차 전용도로 약 100㎞를 달린 후 얻은 연비는 16㎞/ℓ로, 공인 복합연비 15.6㎞/ℓ를 상회했다. 혼잡한 도심에서도 14㎞/ℓ, 고속도로 정속 주행 시 17㎞/ℓ 이상을 달릴 수 있었다. DS 3 크로스백은 세 가지 트림으로 3945만~4340만원에 판매된다. 이날 시승한 최상위 트림 그랜드 시크 오페라는 4340만원이다. DS는 새해 전기차 버전인 E-Tense도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