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가는 기해년 한 해 장기화된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주요 대기업은 안정 보다 혁신을 좇아 젊은 수장을 중심으로 과감한 인사를 단행했다. 오프라인 유통가는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생존 전략을 찾았고, e커머스는 사업 안정화와 수익 모델 다각화로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이 촉발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유통가 전반을 휩쓸기도 했다.
올해 생존 위기를 몸소 체감한 유통 대기업들은 모두 '수장 교체'라는 칼을 빼들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
롯데그룹 유통부문은 올해 정기인사에서 강희태 BU장 원톱체제로 재편했다. 백화점 대표에서 승진한 강희태 부회장이 유통BU장과 롯데쇼핑 대표직을 겸임한다. 산재돼 있던 롯데쇼핑 사업부문도 단일화했다. 빠른 의사결정을 담보하고 내년 온라인 통합 작업에도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신세계그룹도 이마트와 백화점 대표를 모두 교체했다. 이마트는 6년간 자리를 지켜온 이갑수 대표를 대신해 컨설턴트 출신 강희석 대표를 선임했다. 창사 첫 외부인재를 영입한 파격인사다.
신세계는 자회사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차정호 대표를 백화점 수장으로 앉히며 변화를 줬다. 현대백화점도 이동호 부회장과 박동운 사장이 용퇴하고 1960년대생인 김형종 한섬 대표를 선임하며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고강도 인적쇄신에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유통업계 맏형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3844억원으로 작년 동기대비 24.1%나 급감했다. 이마트 역시 2분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다. 수년새 급성장한 이커머스가 단순한 경쟁자를 넘어 유통 대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현실화된 시점이다.
올해 대형마트가 초저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백화점은 초고가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소비 양극화에 맞서 고객층에 맞춘 집중 전략은 새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e커머스 시장에는 훈풍이 불었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30조원 이상 거래액을 형성할 전망이다. 이베이코리아와 쿠팡이 각각 10조원 이상 연거래액을 기록하며 시장을 이끌었다. 11번가, 티몬, 위메프, SSG닷컴, 마켓컬리 등도 전년 대비 거래액을 끌어올리며 선전했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 새해 국내 e커머스 시장은 15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IPTV 업계와의 올해분 송출수수료 협상에서 마찰이 지속되면서 홈쇼핑 간 연쇄 채널 이동이 발생했다. T커머스가 앞번호로 진격하면서 기존 홈쇼핑이 20번대 후반으로 밀리는 등 물고 물리는 채널 쟁탈전이 지속됐다. 내년에는 인기 번호를 확보하기 위한 한층 치열한 쟁탈전이 예상된다.
일반 소비 시장에서는 'NO 재팬'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반발한 소비심리가 식음료를 넘어 의류, 여행,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며 큰 영향을 미쳤다. 유니클로, 아사히 등 일본계 브랜드 매출은 물론 일본 자동차 브랜드 판매량이 작년 대비 급감했다. 일본 여행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국내 항공사가 일부 일본행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도 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