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나란히 보릿고개를 겪었다. 메모리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두 거래 가격이 저점을 형성해 전방 기업은 실적이 하락했고 후방 기업은 투자 기회가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와 기회 교차한 반도체
올해 국내 반도체 업계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메모리 슈퍼 사이클을 맞이했던 반도체 업체들은 글로벌 수요가 줄어들면서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했다. 제품당 8달러까지 치솟았던 D램(PC용 DDR4 8Gb 제품 기준) 가격은 3달러 미만으로 감소하고 반도체 업체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내렸다.
장기화하는 미-중 간 무역 분쟁으로 최대 수요처로 떠오른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고전했다. 가장 큰 고객사인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큰 폭의 메모리 수요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부터 일본발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국내 수출을 개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반도체 제조 라인이 '올 스톱' 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가 국내 반도체 업계의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는 분석이 다수였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위기를 소재 다변화 기회로 삼았다. 반도체 각 분야에서 '국산화'는 키워드가 됐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우회 경로인 벨기에에서 부족분을 충분히 채웠다. 일본 포토레지스트 회사가 한국에 생산·연구법인 설립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불화수소는 대기업과 국내 소재 업체가 협력해서 대안을 찾았다. 솔브레인은 새로운 불화수소 공장을 앞당겨 완공했다. SK머티리얼즈는 기체 불화수소 개발에 한창이다.
아울러 올해는 '반도체 팀코리아' 저력을 다시금 모을 수 있는 굵직한 정책과 방침이 연이어 발표된 한해였다. 2월 SK하이닉스는 2022년 이후 용인시 원삼면 135만평 부지에 120조원을 투자한 첨단 반도체 팹 4개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이 부지에는 국내외 150여개 업체 건물이 함께 들어오면서 반도체 클러스터가 형성될 예정이다.
용인에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 램리서치 연구개발 센터도 설립될 방침이다. 경기 남부 지역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반도체 벨트가 될 전망이다.
또 4월에는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을 발표하면서 10년간 1조원 예산을 투입해 국내 팹리스·디자인하우스·파운드리 등 중소 업체를 집중 지원할 방침이다. 내년 시스템 반도체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3배나 늘어난 2714억원이다.
이번 정책으로 대기업 수요 연계, 신규 칩 개발 투자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서 점차 꺼져갔던 희망 불씨를 살릴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이 재편한 디스플레이
올해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신규 설비 투자가 전무했고 LG디스플레이도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를 마무리하면서 이렇다 할 사업 기회를 확보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 BOE, 티안마, HKC 등이 중소형 플렉시블 OLED와 액정표시장치(LCD) 투자를 집행하며 신규 투자 맥을 이었다. 국내 장비 기업은 해외에서 생존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해였다.
패널 거래 가격도 이렇다 할 반등을 하지 못하고 저점에 머무르면서 한국은 물론 중국 패널사도 어려운 시기를 거쳤다. 중국발 LCD 공급 과잉이 지속되자 국내 패널사는 가동률을 낮춰 생산량을 줄이고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저세대 팹 가동을 중단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중국 패널사들도 추가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가동률을 낮추기도 했으나 전반적인 가격 반등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올해 국내 패널사는 모두 LCD 사업에서 적자를 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했지만 스마트폰용 OLED 사업이 애플 아이폰11 판매 등에 힘입어 다시 활기를 띠면서 하반기부터 다시 성장곡선을 그렸다.
반면에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분기 적자를 거듭해 연간 기준 1조원대 중반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LCD 가격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한데다 중소형 OLED 사업에서 분기 적자가 계속 발생했기 때문이다. 광저우 공장을 가동하면 대형 OLED 출하량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한 수율 문제를 겪으면서 정식 양산 시기가 새해로 밀렸다.
올해는 중국 '디스플레이 굴기'가 성과를 거뒀다. 중국이 중소형 LCD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선데 이어 올해는 대형 LCD 시장에서 출하량과 면적 기준 모두 1위 달성이 유력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올해 대형 디스플레이 출하량 기준 점유율이 중국 38%, 한국 27%, 대만 30%를 차지한다고 봤다. 출하면적 기준으로는 LG디스플레이 26%, BOE 22%, 삼성디스플레이 15%, AUO 13%로 전망했지만 LG디스플레이의 팹 구조조정에 따라 수치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