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과학기술원 등 연구 현장이 인공지능(AI) 발전에 힘입어 연구개발(R&D) 성과 창출이 빨라진다. AI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어 연구자가 손수 해야 했던 과정을 대신한다. R&D 과정에 필요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스템 대사공학'이다. 시스템 대사공학은 세포·미생물·유전자 등을 조작해 연구자가 원하는 화합물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이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KI연구원장)이 주창했다.
인간에게 유용한 화합물을 친환경 대량생산하는 것이 목표로 범용화학물질 생산 균주 개발, 천연 포도향(메틸 안스라닐레이트) 생산 등 다양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
AI 기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사, 유전자 조절, 신호전달 등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을 컴퓨터로 모사한 '가상세포'를 활용한다.
가상세포는 모든 대사 반응 정보를 갖춰, 실험 없이 대사 흐름을 예측한다. 데이터베이스(DB)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를 연결해 연구자가 직접 실험을 거치지 않아도 원하는 반응을 찾아내고 모방한다. 전체 연구 과정 상당 부분을 간략화한다.
이상엽 교수는 딥러닝 기술로 효소 기능 표기인 'EC 번호'를 예측하는 '딥 EC', 약물 간 상호작용을 예측하는 '딥 DDI' 기술 등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사람만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대사반응을 전산화 해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졌다”며 “R&D 과정에서 AI 역할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약물 R&D 과정에서 '스크리닝' 작업에도 AI 역할이 크다. 새로운 약물을 만들려면 표적 단백질을 설정하고, 여기에 대응하는 저분자 화합물(약물)을 찾아야 한다. 수년 전부터 이들 과정에 AI를 활용한다. 이 경우 작업량이 대폭 줄어든다. 수백만개 수준에서 1000~2000개로 검토 대상을 줄일 수 있다.
AI 예측 화합물 약효를 검증하는 김선홍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질환표적연구센터 박사는 “아직은 AI를 통한 스크리닝 과정에서 오히려 중요한 대상이 생략되는 '폴스 네거티브' 문제가 일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곧 해결될 것”이라며 “데이터가 계속 확보되고 컴퓨팅 파워 역시 발전해 머지않아 완벽하게 믿을 만한 시스템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연구현장에서는 R&D 과정에서 AI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AI는 현재 예측과 분석은 물론이고 일부 창작 기능까지 갖추고 향후에는 공학 설계와 같이 더욱 발전된 부분도 담당하게 될 것”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R&D에서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강력한 AI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국가 전체 R&D 역량을 높이는 필수 요건이 된다”고 말했다.
<표> KAIST AI 활용 시스템 대사공학 분야 주요 R&D 성과
<표> 표적 단백질 작용 화합물 모색시 AI 활용 효과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