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발(發) 대형 악재가 터졌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서 판매한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원금 손실 피해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국내 시중은행 두 곳과 헤지펀드 1위 운용사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
라임자산운용이 설정한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는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라임자산운용의 사모채권, 메자닌채권 및 무역금융에 투자한 개방형펀드 환매 요구가 발생했지만, 즉시 현금화가 어려운 자산 구성임에도 6개월 만기의 짧은 개방형펀드로 설정되면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작년 10월 2일부터 라임자산운용이 설정한 '라임 Top2밸런스 6M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3개 펀드 상환이 연기됐다. 이어 10월 10일에는 '플루토 FI D-1호(무역금융펀드)'와 '테티스 2호'에 투자된 재간접펀드 환매가 중단됐다. 라임자산운용은 10월 1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환매가 연기된 사유와 향후 상환계획을 발표했다.
라임자산운용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자산의 현금화를 신속하게 추진해 일부 펀드의 부분 상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초자산 부도 등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차적인 현금화를 통해 일부 펀드를 상환하겠다는 것이다.
라임 측은 “자산을 무리하게 저가에 매각하면 오히려 투자자에게 손실이 돌아가기 때문”이라며 환매중단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매중단 조치를 취했음에도 사실상 '펀드런'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9년 12월 말 현재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290개 설정액은 4조4000억원으로 작년 7월 말보다 1조5000억원(25.8%) 정도 줄었다. 설정액은 작년 7월 말 5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월말 기준)를 찍고 이후 9월 말 5조원 아래로 떨어진 후 계속 내려가고 있다. 작년 8월 금융감독원이 검사에 돌입하자 불안한 투자자들이 대거 펀드를 해지하고 자금을 빼간 것이다.
라임사태 쟁점은 불완전 판매와 라임자산운용이 손실 위험을 알고도 펀드를 운용했는지 여부다. 무역금융펀드는 주요 투자처인 미국 헤지펀드 운용사가 가짜 대출채권을 판매한 폰지사기 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등록취소와 자산동결 제재를 받은 상태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해 라임자산운용을 검찰에 사기 혐의로 통보했다.
일부 투자자들이 불완전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에 나섰다.
법무법인 한누리 구현주 변호사는 “이번 주 신한금융투자와 우리은행에 대해 검찰에 사기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투자자 수익 보장이 우선인 대형 증권사와 은행이 회사 수익을 위해 사기성 펀드 운용 및 판매에 가담한 정황을 문제 삼았다.
구 변호사는 “라임무역금융펀드는 환매 및 청산절차 미완료로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아 투자자들은 당장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판매회사가 투자대상, 수익률, 신용보험가입여부, 투자자금 사용처와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사실과 다른 설명을 한 부분이 확인돼 계약 취소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서 판매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원금 손실 피해도 현재 진행형이다. DLF 예상 손실액은 4200억원가량이다.
DLF와 같은 고위험 상품은 제대로 위험 고지도 없이 가입자에게 팔린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금감원 중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3243명 중 개인 일반 투자자가 3004명(92.6%)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1462명으로 개인 투자자의 절반(48.4%)가량을 차지했다. 파생상품 투자 경험이 전무한 가입자의 투자금이 1431억원(21.8%)이나 됐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고위험 상품을 상품 이해도가 낮은 고령자 등에게 팔았는 지 점검하고 있다. 특히 채권금리 하락으로 DLF 손실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상품 판매를 중단하지 않고 손실 배수를 올리면서 판매를 계속한 대목에 주목한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 피해가 인정된 DLF 상품 투자자들의 경우, 금감원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최소 20%는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시중은행과 협의한 바 있다.
하나은행은 이사회를 거쳐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배상비율을 결정한 3건 중 고객이 수용 의사를 밝힌 2건에 대해 손해배상금 지급을 완료했다. 우리은행 역시 불완전판매 피해 고객에 대한 손해배상 비율 산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융위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고난도 신탁에 대한 판매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고난도 금융상품은 최대 손실 가능성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파생상품, 파생결합증권, 신탁·일임 등 파생형 펀드를 뜻한다.
신탁재산 운용방법을 변경할 때에도 신탁 편입자산에 대한 투자권유 규제가 적용되고, 신탁에 편입되는 고난도 상품(공모)에 대한 투자설명서 교부가 의무화된다. 대형거래, 잦은거래, 고객 투자성향 변동 등 이상거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영업점 직원 핵심성과지표(KPI) 개선 등을 포함한 은행권 자율규제도 마련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됐던 우리은행, 하나은행 수장에 대한 제재 수위는 시장에 대한 강력한 시그널을 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고위험 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는 최고경영자에 치명타를 준다는 학습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DLF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우리은행장 겸임)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전 KEB하나은행장)에게 '문책경고'를 통보했다. 문책경고는 해임권고·정직 다음으로 강한 중징계다. 오는 16일 개최되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
김지혜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