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미국과 이란의 강대강 대치로 요동치고 있다. 불똥은 미·중 무역분쟁 1차 합의로 수요 회복을 기대했던 정유업계로 옮겨 붙었다. 주요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 사태가 악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국내 정유 4사를 긴급 호출, 비상 대응에 나섰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장중 한 때 배럴당 65달러에 근접했다. 전 거래일(63.05달러) 대비 2% 넘게 뛰었다. 지난해 연중 최고치였던 63.98달러(4월 9일)를 8개월여 만에 경신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마찬가지다. 3월 인도분은 장중 배럴당 70.75달러까지 3%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해 5월 28일(70.11달러) 이후 최고치다.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오른 것은 중동 정세 불안 때문이다. 앞서 미국은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사살했다. 이란과 친이란 무장세력은 보복을 공언했다.
이란의 보복 각본에는 연간 1850만 배럴의 원유가 운송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 외에 미군 주둔 이라크 공격이 언급된다. 지난 3일 미국 에너지안보분석사(ESAI)는 “이란이 이라크 석유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 해 이라크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460만배럴에 이른다.
국내 정유업계는 날벼락을 맞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1차 합의로 커졌던 수혜 기대감은 급속히 냉각됐다. 정유업계는 원유 가격과 제품 판매가격의 차이인 정제마진으로 수익을 올린다. 무역분쟁 해소 등으로 제품 수요가 늘면 원유 가격 상승폭보다 제품 가격이 뛰어 스프레드가 확대된다. 하지만 원유가 너무 오르면 수요가 감소, 정제마진이 줄어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해 왔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크게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중동 6개국에서 수입한 원유 총액은 529억2913만달러(61조 8636억원)에 이른다.
정부와 정유업계는 즉각 대비에 나섰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영준 에너지자원실장 주재로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와 석유협회, 한국석유공사·가스공사 등 관계 기관을 긴급 소집했다. 석유수급과 유가동향을 점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동 지역 석유·가스 시설이나 유조선 등 공격으로 공급차질이 발생한 것은 없다”며 “현재까지 점검 결과 원유 국내 도입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당장 영향은 없어도 국제 석유·가스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적극 대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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