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내부가 아닌 외부에 설치하고 법적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결국 '국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총수 재판에 대응하는 한편 미래지향적 기업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 '일회성 이벤트'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만큼 진정성 확보가 숙제로 남았다.
◇'국민 눈높이' 맞추려는 삼성의 시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1차로 이재용 부회장 뇌물 사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설치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1부는 “권력자로부터 뇌물 요청을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방법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17일 파기환송심 4차 공판이 열림에 따라 그 전에 준법감시위원회 신설 사실을 대외 공표할 필요가 있었다.
위원회는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법적 근거 확보에 주력했다.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7개 계열사가 위원회와 협약을 맺고 이를 이사회에서 의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위원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는 내부에 '준법지원인' 등 법적 준법감시시스템을 보유했지만 삼성그룹을 위기에 빠뜨린 일련의 사건에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준법감시위원회를 그룹 외부에 설치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계열사 협약 및 이사회 의결을 통해 권한을 확보하는 그림이다.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는 단순히 재판 대비용 이벤트가 아니라 삼성그룹이 경영 원칙을 대전환하는 분수령으로도 해석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일 새해 첫 행보로 찾은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연구소에서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자 100년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하자”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삼성물산은 에버랜드 노조 와해 의혹 1심에서 임직원 12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입장문을 내고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 눈높이와 사회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순환출자 해소,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 직접 고용, 반도체 라인 백혈병 분쟁 합의에 이어 80년 비노조 정책까지 사실상 폐기하는 등 삼성의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준법감시위원회, 진정성 확보가 과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사실이 알려지자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주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 위원장 내정자도 이 사실을 언급하며 준법 감시 실효성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 놓고보면 준법감시위원회는 몇 가지 약점을 드러냈다.
위원회 운영 경비를 삼성그룹 7개 계열사가 부담한다는 점은 제쳐두고라도 무엇보다 권한이 분명하지 않다.
계열사 위법 위험이나 위법 사항을 인지하면 위원회는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접 조사도 할 수 있고, 필요하면 관련 사실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러나 자료요구나 직접조사 한계가 분명하고, 홈페이지 공개도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받을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검찰 고발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 내정자는 “필요하면 검찰 고발하는 방안도 열어두고 있다”면서 “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 논의 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계열사 내부 정보 확인이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위원회는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사실상 자발적 보고가 아니면 경영 세부 내용을 알기 어렵다.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계기가 된 이재용 부회장 뇌물 사건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종합할 때 총수, 핵심 임원 등 극히 제한된 인원에게만 정보가 공유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원회가 위원회 출범 이후 사건만 다루기로 한 점도 논란 대상이다. 위원회 출범 직·간접 계기가 된 과거 사건은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내정자는 “삼성그룹이 가진 여러 가지 준법감시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심층 분석할 것”이라면서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위원회를 충실히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삼성도 이날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