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툴루즈 로트렉’이 화가가 되기까지
‘앙리 마리 레이몽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이것이 ‘툴루즈 로트렉’의 풀네임이다. 1864년 11월 남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인 툴루즈 백작가의 자제로 태어난 그는 남부럽지 않을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선대의 근친혼으로 말미암아 ‘농축이골증’이라는 유전적 질환 또한 함께 가져야만 했다.
귀족들의 취미생활인 사냥과 승마에 조예가 깊었던 툴루즈 로트렉의 아버지 ‘알퐁스 샤를 마리 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Alphonse Charles Marie de Toulouse-Lautrec-Monfa)’ 백작은 후계자가 될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한다.
하지만 친자매였던 할머니와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사촌 지간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툴루즈 로트렉은 유전적 질환으로 뼈가 약해 사춘기 시절부터 지팡이가 없으면 걸을 수 없었고 14세에는 왼쪽 다리가 15세에는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이후 하체의 성장이 멈췄고 다 자랐을 무렵의 키가 152cm밖에 되지 않았다.
몸이 약했던 툴루즈 로트렉은 귀족들의 또 다른 취미인 ‘그림 그리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한 그에게 아버지는 말 그림으로 유명한 청각장애인 화가 ‘르네 프랭스토(Rene Princeteau)’를 소개해 그림을 배우게 했다. 이후 인상주의 화가들의 스승이었던 레옹 보나(Leon Joseph Florentin Bonnat)에게 드로잉을 배웠고 파리 몽마르뜨에 위치한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화가로서의 자질을 키웠다.
툴루즈 로트렉이 코르몽의 화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때에 프랑스로 유학을 온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와 만나게 되었고 그 둘을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반 고흐는 코르몽의 화실에 겨우 두 달여 밖에 다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띠동갑에 가까운 나이차를 극복한 둘이 단짝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반 고흐의 가난과 툴루즈 로트렉의 부(富), 그리고 그들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쟁이의 외모를 가진 툴루즈 로트렉은 나이 많고 궁핍한 반 고흐에게 밥과 술을 사주는 친구였다.
◇ 툴루즈 로트렉 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월 14일부터 시작된 '툴루즈 로트렉展’은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에 있는 '헤라클레이돈 박물관(Herakleidon Museum)'의 소장품 150여 점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유럽의 3개국 그리스와 이탈리아, 키프로스 그리고 미국의 각 도시에 위치한 열세 개 미술관에서 이미 성황리에 개최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툴루즈 로트렉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이 열네 번째의 전시이자 아시아 최초의 전시다.
전시 오픈 일 하루 전인 1월 13일에는 전 MBC 아나운서 임희정의 사회로 작품의 소장처인 '헤라클레이돈 박물관’의 관계자들과 주관사인 ‘메이드인뷰㈜’의 대표와 부대표, ‘㈜한솔BBK’의 대표, 주최사인 ‘현대씨스퀘어’ 대표, ‘TV조선’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방송·미술계의 셀럽들이 함께한 ‘VIP 오픈 행사’도 진행되었다.
오픈 행사에 걸맞은 리본 커팅 세리머니도 인상적이었지만 베이스 함석헌의 축하공연이 돋보였다. ‘툴루즈 로트렉’과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샹송 가수이자 작사, 작곡가였던 ‘아리스티드 브뤼앙(Aristide Bruant)’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샹송 ‘사랑의 찬가’와 ‘장밋빛 인생’,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마이 웨이(My Way)를 불러주었고 앙코르 곡으로 ‘나는 고양이를 샀다네(I bought me a cat)’를 부르며 행사의 여흥을 돋워주었다.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의 대표 포스터 모델이었고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 역시 그를 모델로 한 작품이기에 마치 환생한 아리스티드 브뤼앙을 보는 듯한 함석헌의 착장이 센스있게 느껴졌다.
부제에서도 드러난 바 있듯 '툴루즈 로트렉展’은 대부분이 카바레 ‘물랭 루즈’와 연관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이 어떠한 연유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를 안내해 줄 만한 어린 시절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첫 번째 섹션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여섯 개의 섹션에서 카바레인 물랭 루즈 속 인물들의 모습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볼 수 있다.
◇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 루즈’를 보여주는 전시
입구의 가림막을 들추고 '툴루즈 로트렉展’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를 소개하는 다소 협소한 인트로(intro) 영역의 뒤로 또 다른 가림막이 있다. 다시 그 가림막을 들추고 안쪽으로 이동하면 그 시대의 물랭 루즈를 그려낸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전시물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롤로그(prologue) 섹션이 정사각형 형태로 존재한다.
영상에서는 동시대에 유행했던 프랑스의 춤인 ‘캉캉’을 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아주 오래된 활동사진처럼 반복된다. 전시를 감상하기 전 관람객들로 하여금 물랭 루즈라는 공간을 흠뻑 느끼게 하는 장치로 여겨졌다.
프롤로그 섹션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캉캉’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영상을 보고 들어온 곳의 맞은편 가림막을 들어 올리면 천고가 높은 전시장의 벽면을 가득 메우는 모양새로 재현된 물랭 루즈의 외관과 마주하게 된다.
툴루즈 로트렉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던 물랭 루즈의 옛 모습을 구현해 그 앞을 거닐었을 그 시절의 파리 시민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진행 방향으로 맞은편 쪽에는 툴루즈 로트렉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화가들을 연도별로 소개하고 그의 일생을 연대기화하여 전시해 두었다.
해당 섹션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가림막을 걷고 나타나는 웅장한 물랭 루즈의 겉모습에 매료되어 자칫 지나치기 쉬운 한쪽 구석의 슬라이드 필름 영사기였다. 언제 마지막으로 봤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툴루즈 로트렉의 드로잉 작품들이 벽에 반사되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이 보였다.
네 번째 섹션 영역의 한쪽 벽면에 전시된 에펠탑 조형물과 실제 에펠탑이 세워지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디어 아트 역시도 주목할 만하다. ‘벨에포크’ 시대를 상징하는 파리의 에펠탑을 실제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와 같은 생김새로 재현한 것도 철골 구조물이 아래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모습을 갖추어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파리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소환시키는 듯했다.
◇ ‘벨에포크’ 시대의 ‘물랭 루즈’를 통해 ‘툴루즈 로트렉’을 이해하다
사실 물랭 루즈가 툴루즈 로트렉이 접한 첫 카바레는 아니었다. 1876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던 ‘물랭 드라 갈레트’라는 카바레가 있었고 로트렉은 그곳을 통해 파리의 유흥 문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나며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그 카바레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그림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889년에 ‘물랭 루즈’가 생기기 이전에도 몽마르뜨 언덕에 아틀리에를 두고 있는 많은 화가들이 카바레를 통해 술과 유희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물랭 루즈가 툴루즈 로트렉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가 그 안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물랭 루즈는 카바레를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의 제작을 툴루즈 로트렉에게 의뢰하였고 그를 위해 특별 좌석을 마련해 주었으며 그의 그림을 가장 주목받는 위치에 전시해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툴루즈 로트렉의 첫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가 공개되자마자 그는 파리 미술계의 스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주인공 ‘라 굴리’ 역시 최고의 댄서로 자리매김하는 등 물랭 루즈와 툴루즈 로트렉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번 전시가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정성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툴루즈 로트렉이 물랭 루즈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그림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이 다양하게 연출되어 전시되고 있는 '툴루즈 로트렉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단순히 걸려있는 작품들을 직관적으로 보기보다는 ‘물랭 루즈’라는 카바레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인물들을 그린 ‘툴루즈 로트렉’ 시선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853년생의 ‘반 고흐’와 친구 사이였던 1864년생의 ‘툴루즈 로트렉’은 각각 1890년과 1901년에 생을 마감했다. 두 화가 모두 서른일곱 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과 작별을 고한 셈이다.
이번 '툴루즈 로트렉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을 통해 ‘반 고흐’의 친구였던 ‘툴루즈 로트렉’도 이전 보다 더 많은 후세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화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자신문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