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이 막을 내렸다. CES는 언제나처럼 올해도 세계 산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 세계 160여개국에서 18만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된다. CES 기간에 라스베이거스는 활기가 넘친다. 호텔과 거리, 식당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으로 넘쳐난다. 이 기간에 호텔 가격은 평소의 10배 이상 치솟는다. 식당 예약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단체 예약을 하려면 보증금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CES는 21세기형 고부가 가치 산업인 'MICE' 산업의 대표 성공 사례다. MICE 산업 육성을 외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부러울 뿐이다. 라스베이거스와 한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규제'다. CES가 열리는 동안 라스베이거스 전시장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자유롭게 시연한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앞에서는 자율주행 기업들이 차량 시연을 한다. 관람객을 태우고 실제 도로를 운행한다. 맥주 등 주류 제조기를 개발한 기업은 자사 제품으로 만든 술을 시음해 보라며 권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라면 자율주행 차량이 전시장을 벗어나 실제 도로를 운행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법과 규제 시스템 아래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코엑스를 벗어나 삼성동 도로를 일반 자동차와 함께 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전시장에서 주류 제조기로 만든 술을 제공하는 것은 가능할까? 당장 LG전자가 개발한 맥주제조기도 시음할 수 없어 개발 후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CES가 아닌 국내 전시회였다면 각종 면허와 허가를 취득해야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신청해도 면허나 허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규제의 틀이 '포지티브 규제'이다 보니 외국 기업의 경우 전시할 수 있는 제품인지 시연이 가능한 지도 살펴봐야 한다.
전시뿐만이 아니다. 인프라 문제 해결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CES 기간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택시와 모노레일 등 기존 교통 수단으로는 원활한 이동이 어렵다. CES 주최 측이 셔틀을 준비하지만 역부족이다. 이를 해소하는 것은 승차공유 서비스다. CES를 앞두고 네바다는 물론 캘리포니아 지역의 우버, 리프트 차량들까지 라스베이거스로 몰려든다. 수요가 많으니 공급자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라스베이거스에 비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정 인프라로 해결해야만 한다. 공유경제 장점을 살린 승차공유는 도입이 막혀 있다. 심지어 타다 같은 서비스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막으려 하는 실정이다.
CES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정부가 말로만 규제 개혁을 외치지 말고 정말 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진정한 규제 프리존을 한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올해 CES에는 서울시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국회의원 등 국내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방문했다. CES가 왜 번성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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