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창업주 '상전(象殿)'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현대 아산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후 4시29분 운명했다. 맨손으로 시작해 재계 5위의 롯데를 키운 '경영신화'를 남기고 영면에 들어갔다.
장례는 고인을 기리고자 롯데 그룹장으로 치러진다. 평소 거화취실을 실천해 온 고인의 뜻에 따라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명예장례위원장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장례위원장은 황각규·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맡는다. 이날 오후 7시 조문을 시작했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 영결식은 같은날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치룬다.
고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90조원대 재계 5위 롯데그룹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했다.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하고 전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껌 사업에 뛰어들었고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초콜릿,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일본에서 사업을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로 한국 투자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롯데그룹을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키웠다.
롯데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경영권 분쟁으로 신 명예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해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다.
경영권 분쟁 속 노환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가 드러나고 수감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으며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 전 부회장, 차남 신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이주현기자 jhjh1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