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마다 특성이 있는 만큼 그 시대의 바탕이 되는 인프라는 다를 수밖에 없다. 17번째 이야기에서 각각 산업혁명을 뒷받침한 인프라를 소개한 바 있다. 인프라는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불리는 것처럼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 활동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산업 형태는 그에 적합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인프라가 필요할까. 이 질문은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3차 산업혁명과 다른 특성을 직접 뒷받침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가 된다.
4차 산업혁명이 적어도 초기에 3차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율화라 할 수 있다. 3차 산업혁명의 특징인 디지털화 내지 자동화를 위해 구축된 인프라가 자율화를 뒷받침할 수 없는 비효율 부분이 4차 산업혁명에서 필요로 하는 인프라다.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로봇이 자율 기능에 의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필요로 하는 많은 정보를 실시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로봇이 어느 위치에서나 지연 없이 필요한 정보를 받기 위해서는 활동할 공간에 디지털망이 촘촘하게 깔려 있어야 한다.
이런 디지털망을 디지털 메시라고 부른다. 디지털 메시는 초고속으로 연결된 클라우드 환경을 의미하며, 단순한 연결망이 아니라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이터센터, 데이터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사물인터넷(IoT)이 포함된다. 특히 데이터를 생산하고 실행하는 말단부에서 지연 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5세대(5G) 통신이 포함된다. 디지털 메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인터넷의 빠른 보급으로 이전의 아날로그 지식이 디지털 문화를 만나 손쉽게 검색돼 융합 및 재생산되는 정보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 결과 여러 방면에서 혁신이 가속됐다. 이 같은 혁신의 가속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지식 생산 속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단기간 내에 활용할 기술 개발에 점점 더 매달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신기술 개발에 국가 차원의 투자가 과거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에서 최고 혁신 기술을 매년 100개 선정하고 있는 연구개발(R&D) 어워즈 100에서 수상한 사례를 조사해 보면 민간 부문 비율은 줄어드는 반면에 공공연구소 부문은 증가하고 있다. 혁신 기술 개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식이나 기술을 빠르게 창출하고, 이를 산업 영역으로 빠르게 이전시키는 지식 인프라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공유경제다. 지난 호에서 다룬 광속의 변화를 따라잡는 수단인 플랫폼 관련 내용은 공유경제의 한 단면이다.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광속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원하는 것은 낮은 비용과 편리함이다. 개인이나 기업 수준에서의 공유 형태를 플랫폼이라고 한다면 지역이나 국가 수준에서의 공유 체계는 인프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유경제 인프라가 효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 간 이익 충돌, 안전이나 보안에 대한 우려 등을 해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부정 측면은 무엇보다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개인이 변화의 희생물이 되지 않고 정체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개인이 환경 변화에 두려움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평생 교육과 직업 교육이 자리 잡아야 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인프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다음 주부터는 불확실성이 큰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을 결정할 요소(퍼즐조각)들에 대하여 알아본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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