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업계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에도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올해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높은 중국 의존도가 위기로 작용한 형국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1764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 증가했다. 매출액은 7조6854억원으로 13.9% 늘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 규모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역시 3분기 영업이익이 42.3% 늘며 반등에 성공했다. 4분기도 면세점 호조로 성장세를 이어갔을 전망이다.
이 같은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업계 표정은 어둡다. 신종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며 올해 실적에 변수로 떠올랐다. 당장 이달 초까지만 해도 한한령 해제 기대감으로 시장 전반에 화색이 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당장 중국 내수소비 둔화는 물론 방한 중국인 감소에 따른 면세점 매출 타격도 우려된다. 특히 국내 화장품 업계서 중국 시장 비중은 절대적이다. 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향 화장품 수출액은 30억3759만달러로 전년 대비 14.3% 늘었다. 국가별 매출에서 무려 46.8%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 내 소비심리가 얼어붙을 경우 국내 업체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매출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중국 현지 매장들도 무기한 영업 중단에 들어갔다. 각 업체는 당장 1분기 중국 내수 실적 눈높이를 낮추는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면세점 매출이다. 면세점은 화장품 매출에 30~40%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판매 채널이다. 면세점서 판매되는 초고가 화장품 성장세에 힘입어 실적 개선을 일궈왔다.
중국인 관광객 입국이 제한되고, 내국인 발길이 끊기면 면세점은 물론 화장품 업체도 타격을 받는다. 당장 아모레퍼시픽과 롯데면세점이 중국인 고객을 타깃으로 선보인 '시예누' 연착륙에도 제동이 걸렸다.
당장 문을 닫는 면세점도 늘고 있다. 신라 서울·제주점과 롯데 제주점은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방문한 것으로 확인돼 임시휴업에 돌입했다. 신라 서울점은 매출 3조원을 훌쩍 넘고, 롯데·신라 제주점도 매출 1조원을 올리는 알짜매장인 만큼 타격이 상당하다. KB증권은 올해 LG생활건강 면세점 매출 성장률 추정치를 기존 17%에서 5%로 하향 조정했다.
각 업체는 실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라인 매출이 힘을 쏟겠다는 계산이다. 알리바바 티몰이나 징동닷컴 등 현지 온라인채널에 입점한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오프라인에서 줄어든 매출을 온라인에서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백화점·대리점 등 오프라인 채널 비중이 32%로 가장 많고, 면세점 비중도 28%에 이른다. 온라인·홈쇼핑 등 디지털 판매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 당시보다 화장품 산업이 대(對)중국 의존도가 더 커진 만큼, 목표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면서 “온라인 채널을 통해 하락세를 얼마나 상쇄하는지가 향후 실적을 좌우할 것”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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