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바로 금연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연초에 금연을 시작했으나 오래지 않아 금단 증상으로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담배에 있는 니코틴은 강력한 중독 물질이다.
특히나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 온 사람들은 이제 와서 끊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 금연을아예 시도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 폐의 회복력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망가진 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믿음
연구 결과 얘기를 하기 전에 우리에게 널리 퍼진 믿음을 먼저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금연을 해도 폐의 건강은 서서히 돌아오며 그마저도 망가진 폐는 완벽히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믿음이다.
인터넷에서 금연클리닉을 검색해 거기 나와 있는 정보들을 살펴보라. 그러면 대개 금연 8시간 이후에는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며 1개월 이후에는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 설명한다. 금연한 지 10년이 돼서야 폐암 사망률이 비흡연자와 같아지고 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전암세포가 정상세포로 바뀐다고 한다.
또 인터넷 검색창에 '폐'와 '금연', 두 단어를 쳐 보면 '폐 망가지면 회복 불능, 금연밖에 답 없다' '흡연자 폐는 완벽히 재생되지 않는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런 기사에서는 대개 흡연자가 담배를 끊으면 감소된 폐활량은 크게 개선되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망가진 폐 조직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주로 호흡곤란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오랜 기간 이뤄진 흡연이 정상 폐조직을 파괴해 폐 기능을 하지 않는 공기주머니 같은 곳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흡연은 또 다른 폐질환이나 심장질환, 혈관질환 위험을 높여 호흡곤란을 더 심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금연을 시작해서 폐 조직 손상을 늦춰야 폐 기능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통념과 달리 폐는 금연하자마자 회복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네이처에 발표된 영국과 일본 공동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일단 금연만 하면 폐가 흡연으로 발생한 세포 변이와 조직 손상을 스스로 회복한다.
10년 이상 담배를 피운 골초는 폐 세포가 잠재적으로 암 세포로 변이할 수 있을 만한 돌연변이를 보인다. 이는 담배에 들어가는 수천 종의 화학성분이 폐 세포 DNA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흡연자 폐와 기도에서 채취한 세포에는 갖가지 돌연변이가 나타났음을 확인했다.
국제 연구진은 흡연자, 금연자, 비흡연 성인 및 어린이 폐를 분석해 세포에 돌연변이가 얼마나 나타났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금연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 손상되지 않은 세포가 최대 40%까지 남아 있었고 이 세포들이 변이된 세포를 대체해 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40년 이상 흡연을 한 사람도 금연을 하면 흡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세포들이 폐 세포 재생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벙커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정상 세포들이 니코틴과 타르라는 총을 피해 숨어 있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세포들은 총성이 멎는 순간 활동을 시작한다. 따라서 금연을 하면 10년이 아니라 바로 폐암의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폐 기능이 정확히 얼마나 회복되는지는 더 연구해야 할 과제이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도 흡연자에게는 희망이다. 지금 당장 금연하면 건강한 폐로 돌아갈 수 있다!
참고로 본인의 의지만으로 담배를 끊었을 때는 성공률이 약 10%, 니코틴 껌이나 패치 같은 대체 요법을 사용했을 때는 약 20%, 금연보조약물인 챔픽스를 복용했을 때는 약 33%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챔픽스는 '바레니클린'이라는 물질이 니코틴과 결합하는 뇌 속 수용체에 먼저 결합함으로써 니코틴이 들어갈 자리를 없애 흡연을 해도 기쁨이나 보상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또 니코틴이 결합했을 때처럼 보상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을 만들어내므로 금연의 성공을 매우 효과적으로 돕는다. 현재 12주 금연프로그램에 성공하면 전문의약품인 챔픽스 약값을 전부 보상 받을 수 있으므로 의지력이 약하다면 한 번 검토해보자.
글:홍종래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