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명퇴제'가 정부와 금융권에 고차방정식 문제로 떠올랐다.
국책은행 명예퇴직 제도 논란이 또 다시 불붙고 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명퇴제'는 금융권 해묵은 이슈였다. 최근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임 행장 선임과도 맞물렸다. 파급력이 커졌다.
지금 다시 화제가 된 까닭은 국책은행 임금피크(이하 임피) 인원 증가세 때문이다. 2020년부터 국책은행 임피 인원은 크게 증가한다. 일부 은행은 비중이 두 자릿수에 달할 전망이다. 국책은행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임피 인원은 사실상 현업에서 배제된다. 인력 순환, 조직 효율화에 큰 악재다. 신규 인력 채용에도 장애물이다. 총 인건비가 정부 규정으로 묶인 국책은행으로선 운신 폭은 좁다.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임피 확대 반대 입장도 만만찮다. 우선 여론은 국책은행 편이 아니다. 공공기관이라는 성격상 '국민 세금'이라는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액 명퇴금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국민정서에 어긋난다.
또 국책은행 명퇴제를 손 볼 경우 다른 공공기관과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진다. 국책은행으로 인해 360여개 공공기관 명퇴금이 일제히 증가할 경우, 세수 부담이 증가한다. 정부로선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가볍게 풀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국책은행뿐 아니라 정부 공공기관 전체가 좌지우지된다. 명퇴제를 두고 정부와 국책은행은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와 국책은행 고위 관계자들이 지난해 말에 이어 이달에도 간담회를 가졌다. 양측이 쉽사리 의견 차를 좁힐 지는 불투명하다.
◇“명퇴제 현실화로 신규인력 채용·조직 효율화·인건비 절감”
국책은행 명퇴제 현실화 요구는 각사 노동조합이 주도한다.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기업은행 노조가 합의한 노사 공동 선언문에는 '희망퇴직 문제 조기 해결'이 첫 번째 조항으로 들어갔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도 명퇴제 현실성 부족을 지적했다. 그만큼 명퇴제는 국책은행 노사 우선순위가 높다. 노조뿐 아니라 국책은행 내부적으로도 명퇴제 개선에 대한 전사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인사 적체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사실상 임피 대상자는 현업에서 물러나 한직으로 이동한다. 핵심 업무에서 제외된다. 조직에 실질적 노동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기존 직원과 임피 직원 간 '불편한 동거'에도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게 국책은행 관계자 전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일부 국책은행은 인력 적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기업은행 임직원은 1만3507명으로 집계됐다. 기업은행 임피 인원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6년 59명, 2017년 58명에서 2018년 343명으로 6배가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510명, 올해 670명에 달할 전망이다. 2021년 984명, 2022년 1018명으로 늘어난다는 관측이다. 2022년부터는 10명 가운데 1명이 임피에 들어간다.
산업은행 임직원은 3138명이다. 올해 말 임피 인원은 311명일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인원 10%가 임피 인원이 된다. 2021년 말에는 365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 임피 인원은 2017년 150명, 2018년 212명, 219년에는 274명이었다.
수출입은행은 1176명이 근무한다. 앞선 두 국책은행보다는 사정이 낫다. 2019년 38명, 2020년 46명, 2021년 51명, 2022년 70명으로 추산된다. 임피 직원 비중이 당분간 한 자릿수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력이 순환되기 위해선 명퇴제가 원활히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현행 명퇴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기업은행은 2016년 상반기를 끝으로 명퇴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은 2014년이 끝이었다. 수출입은행은 무려 10년간 명퇴자가 나오지 않았다. 2010년이 명퇴자가 나온 마지막 해였다. 결국 임피 인력이 정년을 모두 채우고 나온다는 의미다.
명퇴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명퇴금이 적기 때문이다. 명퇴했을 경우 은행에 남아있을 때 절반밖에 임금을 받지 못한다. 국책은행에서는 명퇴시 정년까지 받을 연봉의 45%를 지급한다. 시중은행은 퇴사 직전 20~36개월치 평균 임금을 제공한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50대 중반인 임피 직원 입장에선 한창 자녀들을 키울 때다”라면서 “명퇴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의 절반만 받는다. 눈칫밥을 먹더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히 이득”이라고 전했다.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도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퇴직금 차이는 상당하다. 우리가 시중은행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시중은행에 준하는 퇴직금 산정 기준을 도입해야 명퇴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책은행 명퇴 이슈가 때마다 불거지는 것은 국민 세금 논란이다. 국민 세금으로 억대 퇴직금 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책은행은 이 논란에 선을 그었다. 복수 국책은행 관계자는 “명퇴금은 은행 수익으로 충당한다”면서 “국민 세금이 쓰인다는 인식은 오해”라고 답했다.
국책은행 명퇴제 확대 주장은 조직 효율화,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김경환 성균관대 주임교수는 “고성장시대에서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명퇴제가 예전 구실을 하지 못한 결과”라면서 “인력 구조가 순환돼야 기존 직원 사기가 오른다. 신규 채용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기존 제도 틀에 얽매여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으로 국책은행과 정부가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