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신뢰와 상생

상생은 수십년 동안 산업계에서 외쳐 온 오랜 과제다. 한쪽이 일방으로 다른 편을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다. 서로 돕고 힘을 합쳐 양측 모두 가치를 얻자는 접근이다. 최근 잠잠하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이 이슈화되면서 상생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상생법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상생이 사회 '키워드'로 부각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오랜 키워드였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상생법 개정안을 두고 최근 재계와 중소기업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술 유용 행위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대기업에 부담시킨 것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기술 유용 행위에 대해 3배의 징벌 배상 규정도 신설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이는 그동안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선례로 남아야 할 '협약사업'이 기술 탈취 등 불신의 아이콘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상생은 없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상생이 아닌 살생협력'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다.

상생법은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실효성은 높일 수 있지만 앞으로 대기업과의 협력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기업이 우리 중소기업을 회피할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은 상생법을 두고 대기업-중소기업 대립각이 더 날카로워졌다. 정부와 국회의 조율도 중요하지만 이해 당사자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인식 전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상생으로 혁신의 결실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무너진 양측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형식뿐인, 대외 이미지로 '상생'을 활용해선 안 된다. 같은 배를 탄 동반자라는 인식 아래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믿음을 심는 것이 상생의 첫걸음이다. 상생법 개정안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신뢰 향상을 목표로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관망경]신뢰와 상생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