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국 대다수 대학이 개강을 2주 이상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예년 같으면 앳된 얼굴의 새내기로 활기가 넘쳤을 대학 캠퍼스가 유령도시처럼 적막한 것을 보면 캠퍼스 봄은 절기의 변화나 자연물이 아니라 학생의 열정과 희망으로 채워지는 것임을 실감한다. 많은 대학이 개강을 연기함과 동시에 온라인 강의를 추진하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수 대학이 온라인 교육을 위한 충분한 시설 투자와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은 상태다. 강의 내용을 녹화해서 학생에게 제공하고 질문을 온라인으로 받아야 하는데 교수와 학교 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필자는 개강 이후가 걱정이다. 코로나19는 범국민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종식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과연 우리 대학이 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지 걱정이다. 우리 대학이 직면한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인구 구조 변화로 이미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본인은 물론 학부형까지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러나 많은 학생이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 교육 내용에 실망하고, 고시준비생이 되거나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해외 연수를 떠나고, 취업을 위해 사교육 시장을 전전한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대학 개혁을 위해서는 교육부 및 정부의 개선 의지와 더불어 대학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대학에 대해 '보편성' '평등' 논리를 적용해 '창의성' '수월성'을 저하시켜 하향 평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학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학생 선발과 등록금 조정의 경우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교육 과정 축소와 정원 관련 고질화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부터 문·이과로 나눠 교육하는 것부터 시정돼야 한다. 융합 시대인 요즘 문·이과 구분 자체가 시대착오이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지원금을 볼모로 대학 구조조정을 좌지우지하려 하기보다 시대에 맞는 교육 철학 수립과 공교육 정상화, 입시제도 문제 등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둘째 대학 역시 급변화가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교육 시스템을 진화시켜야 한다. 필자는 학생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해서 1~2년 후 적성에 따라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전공제'를 확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많은 나라에서 대학 입학 시 전공을 정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등장으로 세계 대학 교육이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체감하기가 어렵다. 4차 산업혁명, AI 등이 세계를 바꾸고 있는 시대에 대학 교과 과정이 바뀐 것은 거의 없다. 컴퓨터 관련 인력 수요도 폭증하고 있어도 대학의 정원 조정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내 반대가 크기 때문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자율 전공제를 도입하되 특정 학과로의 쏠림 현상이나 인력 왜곡과 같은 부작용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반대는 미래 세대에게 학과이기주의로 비춰질 뿐이다.
셋째 우수한 교원 확보를 위한 학내 연공서열 문화 철폐, 대학 차원의 연구 지원 확대, 연구 질 평가 방안 마련 등도 대학이 대안을 제시해야 할 문제다. 대학 설립 목적은 신입생 정원 확보가 아니다. 교육자의 사명도 우수한 학생 선발이 아니라 탁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대학 교육이 정치 논리와 국민 정서에 휘둘린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본질마저 훼손돼선 안 된다. 올해 봄에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사회 거리 두기가 종료되고 나면 대학 관계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대학 교육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혁신 방안을 논의하길 바란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mk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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