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유통기업들이 소액주주 권리 강화와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서두르는 가운데 롯데만 유독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룹 상장사 90%가 전자투표를 미도입했다. 신동빈 회장이 투명 경영을 강조한 상황에서 정작 주주권익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 상장 계열사 10곳 중 롯데하이마트를 제외한 9곳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전자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주총 안건을 공개한 롯데케미칼·정보통신은 물론 아직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롯데지주와 롯데쇼핑·푸드 등도 이번 주총에서 전자투표제 도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자투표제도는 주주가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올해 상법 시행령 개정으로 전자투표 행사 인증수단이 다양화되면서 전자투표제 도입이 활발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유통업계 전자투표 도입도 확대일로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작년부터 전 계열사에 도입을 완료했고, 현대백화점그룹도 올해부터 상장사 7곳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CJ그룹도 올해 8개 상장사로 전면 확대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총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전자투표를 대안으로 고려하는 기업들이 늘었지만, 롯데그룹은 올해도 전자투표 도입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코로나19는 갑작스러운 변수인 만큼, 사전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전자투표를 단기간에 도입하기는 어렵다”면서 “주주권 행사에는 큰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이 투명경영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한 상황에서 롯데의 이 같은 행보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작년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롯데 의결권 행사 제도가 미흡하다”면서 “일반주주 의견 개진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소액주주 참여가 불확실성을 키워 자칫 주총 결과 예측에 방해 요소로 작용할까 우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는 그룹 전체에 작년 물갈이 인사에 따른 대표이사 선임안이 예정돼있다. 신 회장도 과다겸직 논란 해소 차원에서 계열사 4곳 등기임원에서 사임하기로 했다.
롯데쇼핑과 롯데칠성음료는 다가오는 주총에서는 신 회장 사임안 처리를 비롯해 사내이사 신규 선임안을 처리해야 한다. 다만 양사 모두 신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이 과반을 넘어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가 큰 변수로 작용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롯데는 전자투표제 도입에 미온적인 분위기다. 최근 입김이 세진 국민연금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관심사다. 국민연금은 롯데쇼핑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며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예고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도 주주권 행사 기반 마련에 미온적인 롯데를 상대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올해 1분기 ESG 등급 조정에서 롯데쇼핑 사회책임경영(S) 등급을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면서 “기업의 ESG 개선을 위한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롯데그룹 상장사 90% 미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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