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배송 규제 완화 물거품…靑 이첩 공문에 지자체 “불가”

靑, 산업부에 공문 이첩했지만
지자체 16곳, 불가 입장 회신
"지역 상생발전.법안 취지 훼손"
대형마트 업계 "제도 개선 시급"

홈플러스 매장 지하에 구축된 배송물류시설
홈플러스 매장 지하에 구축된 배송물류시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한시 완화 요청이 사실상 물거품 됐다. 코로나19 확산에 생필품 수요가 늘면서 대형마트 휴무에도 배송 업무는 허용해달라는 취지지만, 권한을 가진 지자체들이 불가 입장을 밝혔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기초지방자치단체 16여곳이 대형마트 회원사 단체인 체인스토어협회 측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 한시 허용은 불가하다”는 내용의 회신 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대통령 비서실은 '국가 비상시국의 방역·생필품 등 유통·보급 인프라 개선 방안 건의' 민원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첩했다. 청와대가 협회로부터 접수한 공문에는 마트 의무휴업일 배송 규제로 인해 원활한 생필품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를 한시적 완화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 27일 산업부는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시행여부를 검토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고, 이후 처분 권한이 있는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로 전달됐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영업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 권한은 지자체에 법정 위임돼있다.

이에 따라 각 시군구에서 조례 개정 등 검토 작업을 진행했지만 현재까지 16개 지자체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 회신하지 않은 다른 지자체 역시 대부분 회의적 입장이다. 지역 상생과 법안 취지 훼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한시적 허용 건의에 대해 회신한 공문.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한시적 허용 건의에 대해 회신한 공문.

인천 연수구의 경우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에 상생발전을 위해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한시적 허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 금천구도 “지역상권의 상생발전과 지역주민 혼란 발생 가능성, 인근 자치구와 형평성 등을 고려해 기존 의무휴업일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확진자 증가로 마트 배송 물량이 급증한 대구 수성구 역시 “한시적 온라인 배송 허용은 중소유통업과 상생협력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며 조례 개정은 어렵다는 취지의 공문을 마트 사업자 측에 회신했다.

대형마트 업계는 낙담하는 분위기다. 굳이 조례 개정 없이도 상생발전협의회나 행정처분만으로도 영업규제 한시적 완화가 가능한 지자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이번 건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극심한 실적 부진에 빠진 유통업계는 기존 점포를 온라인 물류기지로 전환해 전국 단위 배송 물류망을 구축하겠다는 자구책을 내놨지만, 의무휴업 규제가 지속될 경우 반쪽짜리 사업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사회적 비용·인프라 측면에서 점포 자산을 활용한 온라인 사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전향적인 규제 완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정작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지난달 23일에 이어 이달 8일에도 전국 대부분 대형마트가 의무휴업 규제로 문을 닫으면서 생필품 배송에 차질을 빚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