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보건기구(WHO)는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WHO의 팬데믹 선언은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에 이어 세 번째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브리핑에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WHO는 그동안 팬데믹 선언을 주저해왔지만 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더 확산할 것으로 전망되자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코로나19는 전 세계 110개국 이상에서 12만명 이상 감염자와 4300명 이상 사망자를 낳았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최근 2주 사이 중국 외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13배 늘어났고 피해국도 3배 늘었다”면서 “앞으로 몇 주 동안 확진자와 사망자, 피해국의 수는 훨씬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배경을 밝혔다.
WHO가 내린 팬데믹의 정의는 신종 인플루엔자(H1N1) 발병 당시 밝힌 '대다수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의 전 세계 확산'이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WHO가 2009년까지 사용한 감염병 위험 수준에 따른 1~6단계 경보 단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다. 다만 팬데믹 선언의 기준이 되는 감염자 수, 사망률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없다. 앞서 WHO는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정의를 여러 기구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간 WHO는 팬데믹은 용어적 의미라고 밝혀왔다.
WHO가 팬데믹 선언을 주저한 데는 더 이상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없다는 포기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팬데믹은 가볍게 또는 부주의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라면서 “잘못 사용하면 비이성적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싸움이 끝났다는 부당한 인정을 야기해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별도 선언 절차가 없고 공식 용어도 아니기 때문에 팬데믹 선언 이후 당장 WHO 권고사항 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팬데믹을 선언하면 각국은 바이러스 '봉쇄'에서 '완화'로 정책을 전환하게 된다. 봉쇄는 질병 확산 초기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진단하고 격리하며 이들의 접촉자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전염이 확산하는 것을 막는다. 완화는 해당 질병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확산 가능성을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봉쇄 정책이 여전히 효과적이라는 것이 WHO와 한국 방역당국 판단이다.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당분간 봉쇄 정책과 완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각국이 탐지, 진단, 검사, 치료, 격리, 추적하며 대응한다면 소수의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집단 감염과 지역감염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 “지역 감염 또는 대규모 집단 확진이 있는 나라들 역시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