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감면 없는 유예는 조삼모사입니다. 매출보다 임차료가 더 많이 나가는데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지원에 차등을 두는 것은 부당한 처사 아닌가요?”
허가제 산업 특성상 정부 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면세점업계가 이례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인천국제공항이 텅 비면서 공항 면세점 매출은 70% 넘게 급감했다. 임대료 감면 외에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체념의 목소리가 만연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실효성 없는 지원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면세점을 포함한 공항 상업시설에 임대료 납부를 3개월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반면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곳은 임대료를 25% 감면해 주기로 했다.
임대료 감면을 강력히 요구해 온 면세 대기업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3개월 유예는 무의미하다는 성토다. 이미 임차료가 매출을 넘어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공항점 손실을 메꿔 오던 시내 면세점마저 막대한 타격을 받으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쳤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대기업 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낸 임차료만 9846억원으로, 공사 임대료 수입에서 91.5%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정작 지원은 중소기업에만 집중됐으니 '역차별'이라는 면세점들의 볼멘소리가 충분히 납득 된다.
면세점 협력사와 직원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자신을 공항 면세점 협력사 직원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면세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희생자는 협력업체”라고 호소했다.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고용 안정화에 앞장선 공항공사가 다른 방식으로 고용 불안을 야기하는 모순이 벌어진 셈이다. '착한 임대인' 운동 확산을 전폭 지원하고 있는 정부는 정작 임차인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는 형국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대기업 지원은 안 된다'는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전향적 변화가 필요하다. 공항 면세점은 단순히 대기업의 사업장이 아닌 수많은 근로자의 생계가 달려 있는 일터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맞서 버틸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줄 때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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