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유럽의 가전제품 친환경 디자인 규제가 대폭 강화된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사용량, 수리, 부품 수급, 재활용 가능 여부 등 전 과정에서 친환경 요건을 충족시켜야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국내 가전업계가 1년 앞으로 다가온 규제 대응에 분주해졌다.
유럽 전자 제품 에코디자인 개정법이 내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와인냉장고와 상업용 냉장고를 포함한 냉장고, 조명기기,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 TV 등이 우선 해당된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전자제품의 에너지효율 사용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 2008년 7월부터 에코디자인법을 시행했다. 내년 3월에 시행되는 개정안은 이를 더 강화한 것이다. 그동안 에너지효율에 초점을 맞춘 의무 준수 사항이 '자원 효율성' 분야로 확대됐다. 자원 효율성에는 제품 수리와 부품 재사용, 중요 원자재 사용 정보 제공, 내구성 평가 등이 포함된다.
집행위원회가 개정된 에너지소비효율 등급을 적용한 신규 라벨 규격도 공지했다. 에코디자인 규제 시행은 다양한 규격과 표준 마련이 필요, 순차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먼저 자원 효율성을 위한 수리 정보 제공 의무가 우선 시행된다. 수출 기업은 제품 수리 방법을 유럽 내 수리 전문점에 알려주고 교체 부품을 제공해야 한다.
국내 가전업체도 규제 변화 대응으로 분주하다. 유럽 소비자는 가전제품 구매 시 사후관리(AS) 가능 여부를 중시한다. 에코디자인 개정안이 시행될 때 현지 부품 공급망 강화와 수리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삼성과 LG를 비롯한 대기업은 유럽에서 구축해 온 인프라와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효율 제품도 선제 출시할 예정이다. 최근 건조기 제품으로는 첫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을 달성하는 등 에코디자인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전자도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개정된 기준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제품 내구성과 AS로 친환경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를 더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프랑스 최대 가전 유통 채널 프낙 다르티가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과 함께 조사한 AS 지표에서 LG전자는 세탁기 부문 공동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반면에 중소·중견 기업은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 시장에 진출해 사업하는 중소업체는 거의 없는 데다 오히려 시장 진입 장벽만 높아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업체 관계자는 22일 “제품 개발부터 소재 선정 등 유럽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많은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중소기업은 유럽 시장을 포기하거나 대응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