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기업 피해 최소화 차원에서 공공사업 조기 발주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900억원대 대형 정보기술(IT) 사업을 입찰 마감 사흘을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몇 개월 동안 입찰 참여를 준비해 온 기업은 갑작스러운 입찰 취소에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로 사업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예정된 사업 발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막대한 손해가 예상된다. 업계는 대법원 취소 공고에 정식 이의를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미래등기시스템 구축사업 입찰 마감(19일) 사흘 전 '입찰취소공고'를 조달청에 공지했다. 취소 사유는 '총사업비 변경'이다. 총사업비 변경 관련 사유 등은 적시하지 않았다.
미래등기시스템 구축 사업은 노후화된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국가등기체계 개편 기반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 897억원 규모로 올해 대형 공공 IT 사업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업계는 대법원이 올해 사업 발주를 예상하고 지난해부터 사업 참여를 준비했다. 법조 관련 IT 전문 중소업체 7개사가 사업 참여를 위한 인력을 구성하고 몇 달 동안 사업 제안에 돌입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돌연 사업 취소를 통보하면서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입찰 마감 기한이 다가와 최종 점검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마감 사흘을 앞두고 취소 공고를 냈다”면서 “공공 IT 20여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입찰 마감 며칠 전에 사업 공고를 취소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갑작스러운 입찰 취소는 기획재정부와 대법원 간 이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은 2017년부터 타당성분석 연구를 거쳐 2017년 말부터 2019년 1월까지 예비타당성 검사를 마무리하고 통과했다. 그러나 예산과 관련해 기재부와 대법원 간 시각은 달랐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련 사업이 예타 평가를 통과한 이후 총사업비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부처가 사업공고를 다시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처 간 소통 부족으로 업계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구성한 인력과 초기 투자 비용 등 수십억원이 매몰될 위기에 놓였다”면서 “혹시 재공고가 나올지 몰라 투입한 인력을 다른 프로젝트로 돌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IT 시장을 견인하기 위해 공공 IT 사업 조기 발주 계획을 밝혔다. 이번 대법원 사례는 정부 기조와 배치된다. 업계는 필요한 경우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민수시장 공급량이 줄어서 중소기업 대부분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시장까지 사업을 줄이는 것은 시장에 더욱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예정된 사업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등 대책을 통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적극 나서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