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 규제에 맞서 국산화에 적극 나선 토종 기업들이 모두 호실적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발 빠른 소재 국산화로 일본 정부의 칼끝을 무디게 만들고 경영 성과도 함께 거뒀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가 힘을 합쳐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사례여서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망이 여전히 위협받고 있어 국산화 노력을 꾸준히 이어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액체 불화수소 제조기업 솔브레인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213억원, 영업이익 174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와 협력해 지난해 10월부터 불화수소 공급을 시작한 램테크놀러지도 큰 이익을 봤다.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매출 430억원, 영업이익 4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11.1%나 증가한 것이다.
또 다른 불화수소 업체 이엔에프테크놀로지는 매출 4810억원, 영업이익 596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67.4%나 증가했다.
이들 업체는 지난 7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이후 발 빠른 국산화로 주목받았다. 수출 규제 3개 품목의 하나인 불화수소는 반도체 공정 가운데 웨이퍼에 묻는 찌꺼기를 떼어 내기 위한 화학 물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에 필수인 화학품이지만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 등 일본 기업이 주도하는 품목이어서 빠른 시간 내 대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대처는 빨랐다. 솔브레인은 충남 공주에 새로운 불화수소 제조 공장을 증축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족분을 공급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에도 큰 차질 없이 양사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램테크놀러지도 SK하이닉스와 긴밀한 협력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제품 테스트와 동시에 재고 납품을 진행했다. 이 회사 제품은 고객사에 좋은 평가 결과를 받고 올해 1분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량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램테크놀러지는 최근 300억원을 투자, 설비 증설에 나섰다. 주력인 액체 불화수소뿐만 아니라 일본 쇼와덴코가 독점하고 있는 기체 불화수소 생산 투자도 검토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불화수소 대체 사례를 '국산화 모범 사례'로 평가했다. 대기업의 소재 다변화 방침,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확보, 정부의 정책 지원 및 공장 조기 인허가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서 초유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소부장 생태계에 의미 있는 선례를 만든 만큼 앞으로도 핵심 소재 국산화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멈추다시피 한 지금 토종 기술을 확보해서 핵심 소재를 내재화하자는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마비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IMF 위기 때도 핵심 소재를 다변화했듯 이번 사태도 기회로 생각하면서 반도체 후방산업 국산화에 속도를 올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