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술 패권은 무결점에 달렸습니다. 결점을 안고 있는 기술은 늘 도전에 직면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대체됩니다. 결점을 알게 됐을 때 수정하고 보완하면 늦습니다. 포스트 4차 산업혁명은 처음부터 결점이 없는, 발생 가능한 문제를 미리 고려해 원천 차단한 무결점 기술 간 경쟁 시대가 될 것입니다.”
최규하 한국전기연구원(KERI)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회와 산업은 보다 완벽한 기술을 원하고, 격화한 기술경쟁은 결국 무결점을 향한 기술패권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과거 페스트에서 사스, 메르스, 최근 코로나19까지 충격과 엄청난 손실을 몰고 온 폐해는 결국 자연을 거스른 기술 기반 문명 이기주의 결과다. 앞으로 물 부족, 공기 오염 문제는 더 심각해져 또 다른 엄청난 폐해로 돌아올 것을 짐작할 수 있다”며 “무결점 기술은 이러한 폐해를 예방하고, 새로운 기술로 기존 기술사용에 따른 문제를 해소해 나가자는 새로운 제안이자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이 말하는 무결점 기술은 기술 개발과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개발 과정에서 파악해 최소화한 기술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친환경 제품이나 신재생에너지, 재제조 기술을 일컫고, 미래에는 자연에서 물을 생산하거나 번개를 그대로 전기에너지로 활용하는 기술을 떠올릴 수 있다.
최 원장은 지난해부터 함축적 키워드를 통해 무결점 기술을 이슈화하기 시작했다. KERI뿐만 아니라 정부출연연구기관, 다양한 분야의 세계 학자, 연구자들이 무결점 기술에 관심을 갖고, 미래 연구방향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파워 클리닉스(Power Cleanics)'는 최 원장이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9 국제 미래 에너지전자 콘퍼런스(IFEEC)' 기조강연에서 주창한 용어다. 전기기술을 청정 환경을 고려하며 개발하고 사용하자는 의미다. 그는 “자연은 우리에게 아름답고 고마운 빛을 줬지만, 우리는 빵과 돈을 위해 그 빛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전기 R&D 방향이 가볍고, 얇고, 높고, 빠르고, 작고, 강한 '효율성'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기술이 지닌 효과성, 이면의 부작용까지 고려한 친환경 전기기술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파워 클리닉스를 비롯한 무결점 기술 이슈화는 KERI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 최 원장은 KERI의 도전을 또 다른 키워드 '전기천하지대본'에 빗대 설명했다. “전기천하지대본은 전기가 천하의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이미 우리 일상은 전기로 시작해 전기로 마무리하는 '전기화 시대'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첨단 기술과 제품은 대부분 전기에너지로 작동한다. 국내 유일 전기전문 연구기관 KERI는 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다가온 전기화 시대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올해 KERI 업무 방향도 '다같이(다가치)' '똑같이(또가치)' '꼭같이(고가치)'라는 가치 키워드로 함축해 제시했다. 함께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올해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가치를 재창출하며,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최 원장은 “전기공학자로서 가장 완벽한 무결점 전기에너지를 번개라 생각했다. 그런데 번개는 일직선이 아닌,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연상케 하는 꺾인 직선 형태로 내리친다. 이것이 전기 연구자의 길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됐다”면서 “길은 꺾여 있어도 목적지는 한곳이듯, 연구 분야와 시기, 결과는 다를지라도 연구로 세상에 기여한다는 연구자의 목적은 하나”라고 말했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