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을 통한 개방형 혁신이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등 전통 산업 전반에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는 우려가 점차 커져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더 큰 고비가 닥친 셈이다.
추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신기술 접목을 통한 위기 극복 방안 마련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게 요구된다. 전자신문과 한국무역협회는 공동으로 코로나19 이후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력 방안과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대기업-스타트업 협력은 선택 아닌 필수”
니베아, 라프레리 등 화장품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독일 바이어스도르프는 지난해 말 국내 스타트업 라이클의 지분 25%를 사들여 2대 주주로 올랐다. 바이어스도르프는 무역협회가 지난해 초 추천한 10개 기업 가운데 2개사를 선정해 컨설팅, 바이어 매칭 등 집중 보육 끝에 이뤄진 투자다. 바이어스도르프는 투자 이후에도 뉴욕 'INTO 뷰티 엑스포'에 라이클을 위한 별도 부스를 제공하고, 미국 현지 화장품 유통 바이어와 비즈니스 미팅을 연결하는 등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어스도르프의 사례처럼 해외의 많은 대기업은 △유망기술 도입 △신사업모델 수립 △우수인재 획득 △시장정보수집 등을 위해 글로벌 단위에서 스타트업과 협력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스타트업 유럽 파트너십(SEP)이 선정한 유럽의 오픈 이노베이션 우수 대기업 36개사 가운데 45%는 매년 50개 이상 스타트업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10개 이상 50개 미만을 실사하는 기업의 비중은 23%에 이른다.
전략 차원의 벤처투자와 인수합병(M&A) 역시 활발하다. 이들 대기업 가운데 78%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VC 가운데 약 86%는 5000만유로(약 660억원) 이상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CVC를 통한 투자 활동 뿐만 아니라 보육, 액셀러레이팅, 기술 스카우팅,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스타트업 협력 우수 대기업 가운데 97%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무역협회는 이러한 해외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EU와 미국 등의 혁신 관련 사례를 수집·분석해 우리 정부와 대기업을 위한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이노베이션 가이드'를 마련했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저마다 혁신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정부와 대기업 차원의 지원을 보다 체계있게 꾸리기 위해서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안팎으로 국내에서도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까지도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선제적으로 스타트업과 협력을 통해 개방형 혁신에 나서고 있는 해외 사례에서 국내 혁신 생태계에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부 자회사 설립·벤처 팀빌딩으로 혁신 동력 창출
EU와 세계경제포럼(WEF), 영국의 네스타(Nesta) 재단 등 세계 각국에서 내놓은 보고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당장의 혜택보다도 협력에 따른 과제와 위험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스타트업에서는 대기업 환경에 특화된 솔루션을 개발할 경우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한다. 대기업과 협력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성장 기회를 놓치게 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기업 역시 기업 차원의 전략과 실무자의 성과지표가 불일치하는 문제, 스타트업과의 업무 프로세스 차이로 인한 문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협력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협력 기본 모델도 제시하고 있다. △개별사업부서 차원의 모델(다이렉트 소싱) △사내 혁신추진 부서 모델 △대기업 인큐베이터 모델 △외부 자회사 방식 △외부 팀빌딩 전문가를 통한 다수 프로젝트 방식 등 다섯가지가 대표 사례다.
무역협회에서는 특히 대기업이 독립적인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스타트업 팀빌딩 전문 서비스를 활용하는 모델을 국내 생태계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외부 자회사 설립 방식은 독일 철강 대기업 클로크너(Klockner)가 대표사례로 꼽힌다. 클로크너는 모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담당하는 지식재산권(IP) 중심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자회사를 설립해 혁신을 지원한다.
모기업에서는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검증을 목적으로 자회사에 아이디어를 전달하면 자회사가 최소 수준에서 실현 가능한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모기업에 M&A 등의 방식으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 팀빌딩 서비스는 스웨덴 에너지 대기업 바텐팔(Vattenfall)이 실시하고 있는 이노베이션 전략이다. 사내 혁신 담당자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별도의 이사회를 수립하고 혁신 프로젝트를 수립한다. 외부전문가와 전문 창업가를 영입해 신설 법인을 설립해 프로젝트를 맡기고 대기업은 다른 투자자와 함께 이 법인에 투자자로 참여한다.
이렇게 신설된 법인이 신규 고객 유치 등의 성과를 이룰 경우 대기업에서는 정해진 조건에 따라 창업가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는 구조다. 바텐팔은 이러한 모델로 태양광 데이터 분석과 기업간(B2B) 시장 플랫폼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혁신을 이뤘다.
박필재 무역협회 스타트업글로벌지원실 팀장은 “예컨대 스타트업에게 테스트 베드 기회를 제공하는 대기업에게는 재정·세제 지원등 이노베이션 참여에 따른 유인책을 마련하는 등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풍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기술발전과 규제의 미스매치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 담당자가 테스트베드 설계초기부터 참여해 신기술 도입을 가속화하고 이해관계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