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중국을 통일해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한 진시황이 법가인 한비자를 두고 한 말이다. 엄격한 신상필벌을 주장하는 법가는 장의의 연횡책과 함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한비자는 음모에 휘말려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법가를 대표한 상앙 또한 거열형으로 처형되지만 법가는 이후 한나라가 고대국가 기틀을 잡는 데 핵심 인물로 이바지한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개혁이 지리멸렬해지자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봉건제 폐지, 여성 차별 철폐, 탈취한 토지 반환, 부패 귀족 체포 등 급진 개혁을 조기에 완수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적당한 타협을 원한 부르주아층은 물론 혁명파까지 공포정치에 피로감이 누적돼 민심은 이반하기 시작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만 검소하고 절제된 삶은 후세 혁명가의 롤 모델이 됐다.
조선시대 조광조는 능력 기반 관료 선발, 미풍 양속 장려 등과 같은 개혁정치로 고질화된 폐단을 없앴다. 그러나 위훈 삭제 등 과격한 개혁으로 정적들이 기묘사화를 일으키고, 조광조는 유배됐다가 사사되지만 그의 사상은 율곡 이이 등에게 전해져 동방오현의 조선을 대표하는 개혁가로 칭송받게 된다.
역사 속에서 미화된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시대의 발전은 원칙주의자에 의해 이뤄졌고,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더라도 후세에 두고두고 롤 모델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원칙을 정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도 여실히 보여 준다.
최근 n번방, 라임 등 대형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코로나19에 가려졌기는 하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은 첫째 그 이전에도 유사 사건은 있었고, 둘째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처벌이 너무 관대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례를 보면 극명히 대비된다. 예컨대 한때 '6년 연속 최고 혁신 기업'으로 극찬 받던 엔론! 분식회계 결과 그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엔론 파산은 물론 외부감사를 부실하게 한 아더앤더슨까지 공중분해됐다. 글로벌 1위 컨설팅 회사 앤더슨도 이름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이와 함께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사베인스-옥슬리법과 같은 제도 장치도 마련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위반 시 처벌 강화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거꾸로 '사후'에 처벌이 관대하면 '사전'에는 부모가 어린이 다루듯 간섭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선량한 기업이나 시민까지 불필요한 간섭을 평소에 받게 돼 불편하고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며, 정부 또한 공권력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 등 사회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처벌 강화와 같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원칙주의자의 종말을 보면 엄격한 법 집행과 위반 시 처벌 강화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역사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원칙주의자 덕에 이 세상은 발전을 거듭해 왔고, 후세에 두고두고 롤 모델로 칭송받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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