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 대학이 지난달 갑작스럽게 온라인 교육을 시작했다. 약 한 달 간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면서 우리 대학 현실을 진단하는 계기가 됐다. 준비시간이 부족한 탓에 문제점도 드러났지만 시·공간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수업을 시도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의 장점도 확인했다.
전자신문은 주요 대학 총장과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래교육 혁신'을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가졌다. 온라인 개강이 미래 교육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하는지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온라인 개강 이후 미래 교육에 대한 희망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 해외에 뒤처졌던 국내 고등교육이 미래 교육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해 참석자 간 일정 간격을 둔 채 진행했다.
[참석자(가나다순)]
△박상규 중앙대 총장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
△최은옥 교육부 고등교육정책 실장
△황준성 숭실대 총장
△사회 이호준 전자신문 정치정책부 부장
◇이호준(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대학이 온라인 개강을 시작한 지 약 한 달 정도 지났다. 문제점도 있었고 생각지 못한 효과도 나타났다. 현재 온라인 강의 현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상규(중앙대 총장)=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부터 인터넷 강의에 익숙했기 때문에 온라인 강의에 대한 호응도가 높았다. 교수들도 예상한 것보다 적극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준비했다.
개강 첫 날을 제외하고는 시스템 불안정 문제가 없었다. 매주 학생의 강의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우려와 달리 학생 만족도가 높다. 만족도가 높은 단과대학은 80% 후반대까지 나온다.
물론 개선해야 될 문제도 있다. 준비를 많이 했지만 학생들이 인프라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여전히 부분적인 기술적 문제가 있다. 또 교수가 자체 온라인 동영상을 편하게 제작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다.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할지 연구하고 있다.
◇황준성(숭실대 총장)=숭실대는 과거에도 플립러닝(거꾸로수업) 등 온라인 교육의 강점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 익숙한 교수를 설득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온라인 수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교육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전 과목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동영상 재생 중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숭실대는 학교 결정 이전에 학생들의 온라인 강의 요구가 컸다. 총학생회가 학생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한 학기 동안 비대면 강의를 원한다는 의사를 먼저 밝혔다.
온라인 강의는 장점이 많다. 기존 오프라인 강의에서 이뤄졌던 지식 전달 위주 수업을 개선할 수 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과거 오프라인 강의는 보강하기가 어려웠다. 수업을 듣는 학생의 시간을 조율하기 힘들었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온라인 강의는 보강에 대한 걱정이 없다.
◇신동렬(성균관대 총장)=성균관대는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강 전에 이미 온라인 수업 시행 계획을 갖고 있었다. 교수에게 첫 주 강의를 모두 녹화해서 온라인으로 올리라고 했다. 학생은 미리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첫 주부터 제대로 된 수업이 가능했다
다른 대학보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먼저 미래교육을 향해 가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강의가 전국 대학에서 이뤄지면서 모든 대학이 '순간이동'을 하는 '교수법의 대혁신(grand innovation)'이 일어났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은 대학 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인프라가 부족한 대학은 유튜브에 올리면 된다.
오프라인에서는 교수가 질문해도 학생이 잘 대답하지 않는다. '내 질문이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두려워한다. 온라인에서는 교수에게 질문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온라인에서 질문하면 교수가 아닌 다른 학생이 대답할 때도 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교수와 학생 간 상호작용이 많이 이뤄진다.
온라인 교육은 자기주도적인 창의·융합 교육인 미래교육에 해당한다. '티칭(teaching)' 중심에서 '러닝(learning)' 중심으로 간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온라인 교육의 장점을 살리지 않고, 다시 과거 오프라인 수업으로만 돌아간다면 학생이 반발할 것이다.
이번 온라인 개강은 외국에 뒤처진 미래교육에서 앞서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국내 대학이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미래교육에서 앞으로 치고나갈 수 있다.
◇최은옥(교육부 실장)=케이무크(K-MOOC)는 2015년 문을 열었다. 무크라는 것이 외국에서 시작됐으며, 혁명처럼 우리나라까지 밀려왔다. 케이무크 준비 과정에서 대학 총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참여해달라고 했다. 출범 후 6년이 지났다. 정부 주도로 하다 보니 참여대학은 100여개, 강의는 700여개다. 교수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더디다. 교수가 직접 나서서 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온라인 개강은 우리 교육의 전환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수업이 무조건 오프라인보다 더 나은 수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온라인 수업은 활용할 수 있는 툴(도구)이 많다. 변화가 클 수밖에 없다. 준비를 한 대학과 하지 않은 대학 사이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 과제다.
◇사회=우리나라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선진국임에도 그동안 대학에서 온라인 교육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 대부분 대학에서 온라인 강의가 부족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신동렬=원격강의를 전체 강의의 20%로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 대학의 온라인 강의 활성화를 막았다. 교수가 온라인 수업은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교육은 무조건 대면해서 소통해서 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교수가 많았다. 온라인 교육은 실재감도 없고 교류도 없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강의를 위한 인프라 비용도 만만치 않다. 플랫폼, 네트워크, 스토리지, 카메라,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 초기 구입비가 워낙 크다.
◇박상규=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활발하지 않았던 것은 대학의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은 교양이나 기초수업만 가능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교수들은 연구도 해야 되고, 강의도 해야 한다. 온라인 수업은 대면 수업에 비해 준비해야 될 것들이 많다. 많은 시간을 들여 열심히 준비해도 대학 내 평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앞으로 온라인 교육을 활성화하려면 이에 대한 긍정적인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대학이 교수를 연구 중심으로만 평가하는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온라인 교육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다.
◇황준성=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비판하는 말 중에 '19세기 대학 강의실에서 20세기 교수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이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온라인 교육에 대한 선입견이 많았다. 대학은 기회 비용을 들여가며 굳이 온라인 교육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과거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티칭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대부분의 지식은 이미 온라인에 있다. 교수는 코칭을 하는 멘토가 돼야 한다. 온라인 수업 50%, 오프라인 수업 50%로 '블렌디드 러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에서 하버드, 예일대보다 온라인교육전문기관인 미네르바대학 경쟁률이 높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또한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
◇사회=코로나19가 종식되면 대학 교육이 다시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 온라인 개강 상황을 기회로 삼고, 미래교육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가.
◇황준성=천재지변으로 인해 이번 한 학기 온라인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일시적인 온라인 수업으로 끝난다면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의 고등교육이 혁신을 해야 한다. 미래에 떠오르는 대학은 인공지능(AI) 기반 유튜브 대학이 될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이 계속 캠퍼스 기반 대학에 경고를 주고 있다. 힘들지만 대학은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툴로 온라인 강의를 활용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교육부가 합류해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일이다.
골드만삭스가 2018년 500명의 트레이더를 해고했다. 500명이 15시간 분석했던 것을 AI프로그램이 5분 만에 해결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과거 틀에 메여 있으면 안 된다. 온라인 교육 제도나 인프라 확충 등이 필요하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창의·융합형 인재가 미래 인재다. 협력하는 괴짜의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모범 답안만 찾고 있다. 이들이 마음대로 꿈꾸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
◇신동렬=교수가 아닌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학생이 지금 대학에서 배우는 것만 갖고 사회에 나가면 안 된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이해하고 응용하는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온라인 상에서 지식을 접하고 협력할 수 있다. 실제 대학에서 알게 되는 친구들은 10명이 되지 않는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 많은 학생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학과생들이 협력할 수 있다. 여러 전공을 듣고, 다양한 학과생이 모여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기존 학과 제도 시스템도 완전히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부도 이제 교육영역에서 '애프터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면 대학별 특성에 맞춰서 규정을 풀어줬으면 한다.
교수들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하다. 학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다. 반면 교수들 중에는 온라인 수업 플랫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 윤리 또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댓글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다. 인터넷 윤리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교육부에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쓰이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대부분 외산 솔루션이다. 국내 민간 기업과 교육부가 개발해서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글로벌 화상회의 서비스 '줌'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 투자비용을 들이더라도 우리 것을 만들어서 세계에 나가야 한다.
해외 서비스는 네트워크가 외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온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불안정해진다. 국내 서비스를 잘 개발한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박상규=코로나19로 인해 급박하게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다보니 대다수 강의가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형태에 그쳤다. 지금이 분명 교육 혁신의 기회지만 미래교육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현재 대학의 온라인 강의 콘텐츠가 미래 교육에 충분한가. 아니다. 온라인 교육이 미래교육으로 자리 잡으려면 대인관계, 종합적 사고력, 창의력 향상 등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연구가 절실하다. 단일 대학이 이 과업을 할 수 없다. 대학 공동체가 협력해야 할 시기다. 지식 전달 형태로 진행되는 수업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대학 사회의 논의 방향이 연계돼야 한다.
또 미래교육을 위해서는 학사 제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지식전달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학사제도, 학기제 이런 큰 틀도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나노 학위 등 새로운 학사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미래 사회에 맞는 유능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현재 학사제도가 적절한지 논의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대학을 누르는 규제와 한계가 잔뜩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완에 대한 심층 논의가 요구된다.
◇최은옥=이번 온라인 개강은 교육 혁신의 계기가 될 것이다. 온라인 강의가 전면적으로 이뤄지지만 대학 간 강의 내용과 질은 천차만별이다. 이를 해결해야 한다.
교육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과제가 많다. 학생은 교육 질을 말하면서 등록금 인하 요구를 한다. 대학 강의 수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단지 원격강의 20% 제한을 없애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대학의 혁신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하며, 또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올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할 것이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