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벤처캐피털(VC) 본연의 목적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크면 클수록 혁신과 신산업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정성인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코로나19 이후의 투자 생태계가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IMF사태, 금융위기 등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 생태계가 신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사례를 숱하게 겪었던 수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다.
그는 '벤처투자촉진법'의 시행 역시 오히려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이후 투자 심리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더욱 다양한 시장 참여자가 벤처투자 생태계에 들어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정 회장은 “벤처기업이 결국 성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면서 “네이버, 셀트리온, 카카오와 같은 기업이 계속 탄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민간분야에서의 자금 조달을 늘리고 각 벤처캐피털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코로나19 이후에 대비하기 위한 벤처캐피털 업계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대담=김승규 벤처유통부장
-코로나19로 인해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는 목소리가 많다. 코로나19 이후를 전망한다면.
▲코로나19라는 외생변수에 의해 모든 경제 활동에 활력이 떨어졌다. 타격이 엄청나게 크지만 언젠가는 끝날 일이다. 타격을 받고 난 이후에는 기존 산업 상당 부분이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경쟁력이 있는 산업은 결국엔 살아나고,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때 중요한 것이 벤처투자다. 경쟁력 없는 산업을 대신하는 것이 결국 '뉴 웨이브'이고 4차 산업이다. 신산업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것이야 말로 벤처캐피털(VC)의 본질이다.
벤처투자업은 코로나19가 지나면서 더욱 규모가 커질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과거에도 IMF 사태로 큰 타격을 입은 이후 벤처기업이 여럿 등장했다.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증시가 단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지속 상승했다. 결국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을 새로운 산업이 대체했기 대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크면 클수록 세계적으로 혁신과 신산업에 대한 붐이 크게 일어날 것이다. 100% 확신한다.
-코로나19 이후 투자 생태계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는가.
▲벤처캐피털이 바라보는 영역은 언제나 모든 게 새로운 시장이다. 쇠퇴할만한 사업영역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항상 성장산업을 바라본다. 벤처캐피털의 가치는 결국 성장성이다. 하이엔드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보는 것도 결국 성장성 때문이다. 기존 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쇠퇴하는 산업에 하는 투자는 의미가 없다.
결국 벤처투자 시장도 코로나19를 계기로 바이오를 비롯해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신산업을 찾으며 특수 경기를 맞이할 것이다. 과거 정보기술(IT) 산업이 각광받으면서 관련 분야에 벤처투자가 늘었다. 하지만 반대 급부의 산업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제는 4차 산업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 산업분야를 성장시켜, 경제 혁신을 달성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털이 앞장서 이끌어가고 경기 전체의 회복을 기대해야 할 때다.
-벤처투자촉진법이 8월부터 시행된다.
▲벤처투자촉진법 제정은 시의적절하다. 늦은 출발이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창업 중심으로 벤처투자 시장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투자자 시각에서도 시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벤처캐피털뿐만 아니라 은행, 증권사도 모두 벤처투자를 할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나 창업보육까지 가능해졌다.
결국 이제 벤처투자 생태계는 각자 전문성 있는 분야로 영역을 확대할 수 밖에 없다. 그간 제도적 제한으로 성장과 업무가 제한됐다고는 하지만 벤처캐피털이 독점 지위를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독점도 풀린 셈이다.
이제는 모두가 자기 독자 영역을 찾아야만 한다. 초기냐 후기냐, 구주매입이냐 아니면 전문 업종에 집중 투자를 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투자자도 경쟁력을 갖고, 경쟁력을 원천으로 민간 자금도 자연스레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각자 투자 영역에서 포트폴리오를 가져갈 수 있게 전문화·세분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양한 벤처투자 생태계 참여자에게 시장 질적 발전을 위해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다양한 벤처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벤처캐피털 업계 발전과 나아가 국가 경제 혁신성장에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시장참여자가 각기 특화된 분야에 더욱 집중해서 전문성을 높이고 벤처투자 규모도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엔젤이나 액셀러레이터가 예비 창업가 및 극초기 단계의 창업자를 밀착 보유하고, 증권사는 상장 직전 단계에 오른 기업에 미래 성장성을 투자하는 그림이다.
은행은 소재 부품 장비 분야처럼 대규모 설비 투자가 수반되는 기업에 대출 연계 투자 등 기업 성장 단계에 따라 적합한 투자를 집행함으로써 벤처캐피털 업계가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 2000년 벤처붐 당시와 현재 스타트업 열풍에 차이가 있나. 벤처투자 생태계 얼마나 성장했다고 보는지.
▲성공한 창업자가 후배 스타트업을 양성하고 창업 기회가 많아지는 일은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다. 창업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
반면 벤처투자 업계는 창업투자회사 수 기준으로 20년 전 120개에서 현재 150개 정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스타트업 성장과 더불어 사회적 관심과 영향력도 커진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하는 스타트업과 벤처투자 열풍이 위기를 잘 극복해 20년 전 벤처붐 당시의 규모를 뛰어 넘기를 바란다. 네이버, 셀트리온, 카카오처럼 새로운 벤처기업이 스케일업을 통해 국내외 경제를 이끌어가는 리딩컴퍼니가 되고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례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스케일업, 유니콘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벤처인증 제도가 바뀌면서 과거 벤처기업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바뀌게 됐다. 과거 기업의 현재 기술성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보겠다는 의미다. 벤처투자자의 판단력을 신뢰하고 벤처투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인정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벤처캐피털 역할이 중소기업의 데스밸리 극복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유니콘기업으로 스케일업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진정한 모험자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털 역시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초대형 펀드를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보다 많은 민간 자본의 유입이다. 벤처캐피털 투자심사역의 평판, 운용실적, 네트워크 등도 중요하다. 협회가 더 노력해야 한다.
역량 있는 벤처캐피털과 함께 벤처생태계 내에서 향후 대기업을 대체할 만한 유니콘기업이 많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대체투자, 사모시장에서 채권이나 부동산에 비해 벤처투자 비중이 높아지고 벤처펀드에 해외자금 유입도 증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벤처캐피털 본연의 의미는 위험성이 큰 분야에서 신사업을 키워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소기업을 벗어나면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벤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벤처기업이 결국 성장 중심으로 가서 커져야 하는 것이다.
스케일업이나 성장사다리, 유니콘 같은 개념을 정부에서 제시한 것은 너무나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서야 벤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 셈이다.
IMF 당시 30대 재벌 절반이 망했다. 망한 절반을 벤처기업이 대체했다. 대기업에서 똑똑한 사람이 나와서 벤처기업을 차렸다. 휴대폰 산업만해도 벤처기업이 시작한 것을 삼성 같은 대기업이 발전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기업이 커지니까 자연스레 부품 공급하는 벤처·중소기업도 커지고, 당시 내로라하는 모토로라나 노키아도 국내에 R&D센터를 만들게 됐다. 이런 현상이 벤처기업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로 큰 기회를 앞두고 있다.
-벤처투자 규모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다고 보는지.
▲4조원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엄청나게 작은 규모다. 벤처투자 규모가 20조원이 돼도 부족하다. IMF 때나 지금이나 산업구조가 안 변했다. 20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20년 이후를 생각하면 신산업이 없으면 안된다.
자동차 산업처럼 경쟁력 있는 분야 하나만 대체된다고 해도 시장규모가 수백조원이다. 산업 하나 대체하는데 10조~20조원 들어간다고 봐도 사회 전체적으로 큰 돈이 아니다. 증시가 좋지 않아 많은 돈이 날아갔다고 하지만 그 돈으로 지금 네이버 하나 살렸다고 생각해도 많은 돈을 날린 것이 아니다. 까먹은돈 채우고도 남는 일이다.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살린 것 만으로도 수백조원의 경제 효과가 계속 나온다.
1년에 30조~40조원 투자해서 20조원 날렸다고 해도 30~40년 이후를 생각하면 날린 것이 아니고 투자한 것이다. 금액이 당장에 너무 커 보이니 걱정하는데, 크게 봐야 한다. 물론 정부 돈으로 전부 충당할 수 없다. 그래서 민간 자금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인프라를 깔고 코스닥 살리고, 자꾸 해외로 나가는 우리 기업을 잡아둘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벤처캐피탈협회 출범이 30년을 넘겼다. 오는 8월부터는 벤처투자촉진법도 시행돼 업계에 큰 변화 예상된다. 향후 계획은.
▲벤처투자촉진법 이후 기대되는 가장 큰 변화는 다양한 유형의 벤처투자 기관이 유입되는 것이다. 다양한 기관이 들어올수록 벤처캐피털 업계 전문성도 강화되고 벤처투자자금 조달 시장에서 민간 자금도 늘어날 수 있다. 민간 부문의 출자 비중이 현재 60% 안팎인데 앞으로는 90% 수준까지 늘어야 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벤처투자 업계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협회에서도 다양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회원사의 투자 관리 업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경영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회원사의 투자와 회수를 활성화할 수 있게 투자설명회와 인수합병(M&A) 프로그램 운영방향도 개선할 계획이다. 회원사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원 사업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5년 이후 또는 그 이상 장기 시각에서는 회원사의 중심에서 각 회원사가 필요한 경영지원, 인력 연수, 투자처 발굴 관리 등 양질의 서비스를 전천후 제공할 수 있는 위치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연수원을 단독 설립해 독립시키고 벤처캐피털리스트 자격증 과정을 도입하는 등 협회만의 경쟁력도 갖춰 나갈 계획이다.
○정성인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충남 당진 출신이다. 제물포고등학교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KTB네트워크의 전신인 한국기술개발으로 입사해 벤처투자업계에 줄곧 몸담으며 약 40년을 벤처투자시장과 함께한 1세대 벤처투자 전문가다. 1997년 현대기술투자를 거쳐 2001년 인터베스트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2005년 직접 설립한 프리미어파트너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프리미어파트너스는 2월 현재 기준으로 총 벤처투자조합 운용자산 3435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유한회사형 벤처캐피털(LLC)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정 회장은 지난해 2월부터 제13대 벤처캐피탈협회장을 맡고 있다.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