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시장에서 해마다 고속 성장을 이어가는 영역은 고급차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수입차 브랜드들이 판매를 늘리며 전체 시장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모든 딜러사가 수익을 내진 못한다. 오히려 한해 수억원에서 수십억씩 적자를 내는 딜러사도 적지 않다.
지난 수년간 고급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를 확대하며 입지를 넓힌 재규어랜드로버 딜러사들이 대표적이다. 전자신문이 재규어랜드로버 주요 5개 딜러사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모든 딜러사가 적자 경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네트워크 확장으로 인한 과당 경쟁이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재규어랜드로버 딜러사 가운데 매출액 기준 1위인 KCC오토모빌은 지난해 14억6467만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 영업이익 15억원에서 지난해 적자로 전환했다. 매출도 2018년 2792억원에서 지난해 2156억으로 줄었다. KCC오토모빌은 전국에 5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남과 대치 등 수입차 요충지에 전시장을 보유한 천일오토모빌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천일오토모빌은 지난해 72억원 영업손실을 내며 전년 대비 적자 폭이 58억원 늘어났다. 매출도 1675억원으로 전년 대비 32.8% 감소했다.
주요 딜러사 아주네트웍스와 선진모터스도 지난해 적자 전환했다. 아주네트웍스 영업손실은 74억원, 선진모터스 영업손실은 30억원에 달했다. 양사 매출 역시 2018년 2400억원대에서 지난해 1700억원대로 줄었다.
수입차 큰손 효성도 재규어랜드로버 판매 사업에선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7년 판매를 본격화한 이래 3년 연속 적자다. 효성프리미어모터스 적자 폭은 2018년 23억원에서 지난해 50억원까지 늘었다. 효성은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해 토요타, 렉서스, 페라리, 마세라티 등을 판매하는 국내 대표 메가 딜러사 중 하나다.
재규어랜드로버 딜러사 수익성이 악화된 가장 큰 이유는 판매 하락이다. 재규어는 지난해 2484대를 등록해 2018년보다 판매가 32.9% 감소했다. 랜드로버는 7713대로 34.5% 줄었다. 지난해 수입차 평균 판매 감소율 6.1%보다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판매는 하락세인데 딜러사 숫자는 많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지난해 판매 감소 속에서도 BMW 메가 딜러사 중 하나인 도이치모터스 자회사 브리티시오토를 신규 딜러사로 영입했다. 이미 재규어랜드로버는 상위 5개 딜러사 외에 브리티시오토, JL모터스, C&D모터스, 인타이어모터스, 한영모터스 등을 포함해 총 10개 딜러사가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가 훨씬 많은 BMW가 7개, 메르세데스-벤츠도 11개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판매량에 비해 딜러사와 전시장이 많아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익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재규어랜드로버 전체 판매량은 1만197대로 전국 30개 전시장 한 곳당 연간 평균 판매량은 339대에 불과하다. 생존을 위해 무리한 가격 할인에 나서다 보니 중고차 잔존가치 역시 다른 고급 수입차 브랜드보다 월등히 낮은 편이다.
수입차 딜러사 한 임원은 “재규어랜드로버는 정량보다 정성으로 마니아층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판매 전략을 짜야 하는 브랜드”라면서 “그러나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본사가 성장세보다 무리하게 딜러사 확충에 나서면서 딜러사 모두를 위기에 빠트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가 정책과 품질 이슈 등도 적자 배경으로 지목된다. 실제 랜드로버는 고가 모델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해 국내에 판매하고 있다. 랜드로버 주력 모델 레인지로버나 벨라 국내 판매 가격은 미국이나 영국 현지 가격보다 30% 이상 비싸다. 서비스센터 30개 불과해 서비스 만족도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