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코로나 시대의 연구

[ET단상]코로나 시대의 연구

전쟁터가 따로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매일같이 추가 확진자가 몇 만명 발생하고 사망자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2020년의 세계를 보며 든 생각이다. 세계 경제까지 휘청거리니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전화(戰火)가 휩쓸고 간 것처럼 황폐해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음에도 별로 신통한 것이 없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이 사태는 우리 사회의 가치와 발전 방향 근본을 바꿔 놓을 위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월 미국 국제 외교 분야 전문지 '포린 폴리시'를 통해 하버드대 스티븐 월트 교수는 “코로나19가 덜 개방되고 덜 번영하며 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과학과 기술, 사회가 긴밀히 엮인 현대사회에서 사회 내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다면 그것이 즉각 과학과 기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이에 따라 우리 과학기술 역량의 지속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표준이 서게 될 코로나19 이후의 새 시대가 과학기술계 전반과 연구개발(R&D)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석하고, 이에 맞게 연구 환경을 선제 변화시키고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연구자 간 연구·학술 교류가 비대면 방식으로도 충분히 소화될 수 있게끔 시스템이 바뀔 필요가 있다. 학회를 통해 교류하던 기존 전통 대면 방식의 학술 교류는 당분간 예전만큼 위상을 되찾지 못할 것이며, 반대로 온라인 영상회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연구 교류에도 해당될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대학과 연구소에서 비대면 방식의 상호 소통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웹 세미나 등 활성화로 위축되는 국내외 인력 교류에 대비해야 한다.

또 연구 현장에 디지털, 원격 생산 기술이 도입돼 공간 제약이 없는 연구가 담보돼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재택근무로 실험실 현장 연구를 통제하고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보안과 네트워크 문제로 말미암아 연구실에 저장된 데이터의 처리와 소프트웨어(SW) 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택근무 방식으로는 연구 생산성 유지나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클라우드 PC 서비스와 확장성 있는 SW 기술을 접목,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연구 환경을 지향하는 체제 혁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이러한 기술 발전과 환경 구축을 통해 연구원과 대학원생의 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과학기술인 근로에 대한 정의를 근본부터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아침부터 실험실에 나와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실험에 몰두하는 것은 더 이상 능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로 애초에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효율 연구를 위해 R&D 인력 근로 시간을 어떻게 조정하고 배분할 것인지, 그에 따른 보상과 처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효과가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위기에 놓여 있는 서유럽과 북미 등 선진국과의 연구 교류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활발한 국제 교류 없이는 과학기술 발전과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연구 정책과 방향이 국제정치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각국 과학자가 연결의 끈을 놓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또 탈세계화 사조에 따라 기후 문제와 같이 국제 공조가 필요한 연구 주제는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역설이게도 정부는 이에 대한 지원을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정치·경제 분야의 다양한 변화와 문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전 지구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내버려 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지만 이 말은 역사를 써 온 승자에게만 항상 참이었다. 정부와 과학기술인 그리고 일반 시민이 협력 및 이해를 통해 새 시대 변화에 대응한 연구 환경을 조성한다면 우리는 훗날 이 시기를 가리켜 한 발걸음 크게 도약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시기였다고 회상할 것이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주인공의 끈질긴 사랑처럼 어떤 상황과 시대에도 과학기술 연구는 지속돼야 한다. 코로나 시대의 연구는 어느 때보다도 과학기술인의 끈기 있는 연구와 몰입을 요구한다.

김성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 선임연구원 sskim@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