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현대차 노조 "현실 직시해야 미래 있다"

“생존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미래도 있습니다.”

국내 산업계의 대표 강경 노조로 꼽히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달라졌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데 공감하며 투쟁 대신 생존을 위한 임금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사측과 더불어 미래 모빌리티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환 배치나 재교육에 대한 긍정적 논의도 시작했다. 현대차 노조의 상생형 노사관계 전환은 올해 코로나19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산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전경.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전경.

2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최근 내부 소식지를 통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올해 임금협상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무리한 투쟁보다 생존권 보장과 미래를 준비하는 협상 결과를 도출해 내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현실과 동떨어진 포퓰리즘 정책을 지양하고 생존 보장을 선택하겠다고 강조했다.

진상건 현대차 노조 사무국장은 “조합원 생존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품질력을 바탕으로 생산 활동에 전념해 코로나19 이후 현대차 경쟁력을 높여 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합원들에게 당부했다. 진 사무국장은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 노조가 위기를 조장한다고 질타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회사 수익성 저조와 전 세계적 해고·감원 상황에서 투쟁으로 돌파하라는 것은 불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수출을 위해 정박 중인 자동차 운반선.
수출을 위해 정박 중인 자동차 운반선.

이보다 앞서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협 시작 전 주요 현안 해결을 위해 지난 12일 1분기 노사협의회 상견례를 열었다. 노사는 1분기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올해 임금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노조는 다음 달 말까지 올해 임협 요구안을 확정하고 사측과 본교섭 일정을 잡을 계획이다.

이상수 현대차 노조 지부장은 “노사 간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회사가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조합원의 노고를 인정하고 요구안을 전폭 수용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언태 현대차 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출 시장 붕괴로 올 하반기에 자동차 산업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면서 “어려움은 있지만 최선을 다해 노사 협의에 임하겠다”고 호응했다.

미래차 시대 대응을 위한 인력 전환 배치와 재교육 논의도 시작했다. 지난 19일 노사는 고용안정위원회 노사 자문위원 7명을 위촉했다. 자문위원회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 변화에 대비한 직원 고용 문제와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하고 노사 의견 대립 시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된다.

노사는 지난해에도 관련 전문가 5명을 1기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1기 위원들은 현대차가 2025년까지 전기차 생산 비중을 늘리면서 제조 인력 20%를 줄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노사는 지난해 정년퇴직 등 자연 감소를 통해 고용 규모를 줄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올해는 인력 전환 배치와 재교육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가 코로나19 이후 회사 생존을 위한 대응책에 전향 자세를 보이면서 올해 강경 투쟁을 지양하고 노사관계 모범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