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한 지 1년이 가까워진다. 지난해 7월 1일 이후 말 그대로 혼비백산했던 우리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와 수급 다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잘 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불화수소 재고가 바닥나면 당장 국내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출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정부와 민간이 혼연일체가 돼 대안을 찾고 빠르게 대처한 결과다.
국내 소부장 업계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인된 국민들의 지지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그동안 대기업의 부름을 받지 못해 음지에 있던 중소기업들의 기술과 생산 라인이 다시 재조명됐다. 언제 다시 이런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듯이 대기업들의 자세도 180도 바뀌었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아니었다면 어림없었을 변화다.
특히 모든 제조업의 뿌리인 소부장의 중요성을 전 국민이 알게 됐다는 것도 일본 수출 규제가 가져온 또 다른 효과다. 소부장 산업 육성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수십년 동안 이어졌던 홀대가 단숨에 역전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직후 '소부장 혁신을 위한 진짜 마지막 기회가 왔다'던 누군가의 일갈이 틀리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결단(?)은 고스란히 자국 업체에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일본 현지 언론도 인정하는 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국 기업들의 조달 전략이 전환되면서 일본 소재업체 실적에 그늘이 지고 있다”면서 “한·일 정부의 대립이 일본 기업 현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썼다. 정부의 섣부른 조치가 자국 업체에 자충수가 됐다고 인정한 셈이다. 최근 소부장 업계에서는 핵심 소재와 부품을 한국에서 생산하기 위해 국내 업체와 협력을 타진하는 일본 업체들의 기웃거림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느 나라건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2일 우리 정부가 일본에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의 원상회복을 강력하게 요청한 배경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수출 규제의 근거로 내세운 사유가 모두 근거가 없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재래식 무기 캐치올(상황허가) 통제를 이전보다 강력하게 보완하고, 수출관리 및 무역안보 관련 조직과 전문성을 대폭 강화했다.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극자외선(EUV) 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3개 품목의 수출 거래도 건전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부터 양국 국장급 정책대화를 통해 긴밀하게 소통해 왔다는 점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후 보름이 지났지만 일본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일본 당국자들의 입장이 이전과는 상당히 바뀌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결국 꼬인 매듭은 묶은 자가 풀어야 하는 법이다. 규제의 근거가 사라졌으면 당연히 원래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한·일 산업계는 불필요한 긴장 관계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건전한 협력과 경쟁이 필요하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자국 소재 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장본인이자, 한국의 소부장 산업 혁신을 이끈 1등 공신'이라는 원망과 비아냥을 언제까지 듣고 있을 텐가. 일본 정부는 이제 정정당당하게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보여 줘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정한 답변 시한은 이달 말까지다. 이제 사흘 남았다.
양종석 산업에너지부 데스크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