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블록체인 도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처리 속도나 확장성과 관련된 성능 문제다. 블록체인이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막상 도입했을 때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없다면 블록체인 도입은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성능 문제를 해결한 확실한 레퍼런스를 갖춘 블록체인 솔루션이 나온다면 모를까 섣불리 도입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트너는 최근 500여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블록체인 관련 설문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도입한 기업 가운데 75%는 블록체인을 이미 도입했거나 올해 말까지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IoT 기반 네트워크는 수많은 기기를 연결하고 그 안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지만 현재의 블록체인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8년 그린위츠의 조사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은행·컨설팅기업·기술공급업체·거래소 등 213개 글로벌 기업의 블록체인 담당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블록체인 도입에 어려움이 있으며, 42%가 블록체인의 확장성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소프트웨어(SW) 발상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SW 차원의 개선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점차 개선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기술 상용화가 이뤄질 수 있는 정도의 놀랄 만한 개선은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용 블록체인 시장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퍼레저 패브릭은 리눅스 재단의 오픈소스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축에 특화돼 있다. 450 TPS의 초기 버전으로 시작했지만 Raft 컨센서스 오더링, 병렬 처리 및 전송 최적화 등 방법을 적용해 최근 발표한 2.0 버전에서는 3500 TPS까지 속도를 개선했다.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IBK기업은행 등이 참여한 R3 Corda는 세계 100여개 금융사가 연합한 세계 최대 금융 블록체인 컨소시엄으로서 금융 컨소시엄 최적화와 합의 과정 분리, 처리과정 경량화 등으로 최근 4.0버전에서는 617 TPS까지 속도를 개선했다.
대부분의 혁신 기술은 SW에서 출발했고, 이를 구현해 주는 하드웨어(HW)를 통해 상용화됐다. 그래픽 이미지 처리를 위한 그래픽중앙장치(GPU)는 고화질 영상이나 게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혁신 분야 확산에 기여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은 통신 전용 단말기를 비롯해 기술 구현을 위한 센서와 모뎀,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지능형 디바이스 등 HW를 통해 완성되고 있다.
AI의 경우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인공지능중앙장치(IPU)가 등장해 GPU의 3배 추론 처리가 가능해졌고, 머신러닝을 위한 구글의 기계학습중앙장치(TPU)는 중앙처리장치(CPU)·GPU 대비 15~30배의 성능 구현을 가능케 한다. 기술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위해서는 SW의 기술 개선과 더불어 이를 담을 수 있는 HW의 발전이 동반돼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실제 도입에서는 아직도 제약 조건이 많다. 기술 도입 판단을 하는 과정의 경영상 기술 도입 이슈, 기술 완성도와 사회 이슈 등 실무상 어찌 해보기도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성능 구현이다. 개념 검증(POC) 수준에서 기술 성능이 구현되지 않아 나머지 이점을 뒤로 미루게 되면 정작 확인해야 하는 기술의 이점에 대한 판단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블록체인의 기술 상용화를 위한 갑론을박이 진행형이지만 명백한 것은 기술 이로움의 기본은 대중이 편리하고 유익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를 위한 성능을 완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블록체인 기술 가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움 김판종 대표 panjong75@themediu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