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 규제 철회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일본을 상대로 강경 대응에 나선다. 지난해 11월 한 차례 거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 재개라는 칼을 빼 들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위법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한편 국제사회 공감대 형성에 총력을 기울인다. 반도체 제조에 핵심인 3대 수출 규제 품목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다시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일본이 지난해 우리나라를 상대로 단행한 3대 품목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22일 제조 절차를 중단한 이후 194일 만이다.
나승식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우리 정부는 대화가 진전되기를 원했지만 일본 측에서는 우리가 원한 답변이 오지 않았다”면서 “WTO에 이번 건에 대한 패널 설치를 요청, 향후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12일 일본이 수출 규제 명분으로 내건 △한·일 정책 대화 중단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미흡 △수출 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등 3개 사유를 모두 해소했다고 발표했다.
또 일본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극자외선(EUV) 레지스트, 불화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서 수출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사실을 제시하고 5월 중 수출 규제 철회에 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답변을 내밀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나타냈다.
나 실장은 “일본 정부는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현안 해결을 위한 논의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현 상황에서 당초 WTO 제소 중단 조건이던 '정상적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WTO에 패널 설치 요청서를 발송하면 기존에 중단된 절차가 다시 시작된다. 산업부는 WTO가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적어도 1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나 실장은 “일본 정부가 지난해 12월 포토레지스트 수출 규제를 일부 완화한 것을 고려해 제소 관련 세부 내용을 보완했다”면서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통해 일본의 3대 품목 수출 제한 조치의 불법성과 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WTO 제소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WTO 상소위원 7명 가운데 6명이 공석인 데다 상소기구 폐지까지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견제로 분쟁 해결 관련 절차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악재다.
나 실장은 “현재 WTO 기구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우리가) 그런 상황을 예단할 필요는 없다”면서 “미국이 WTO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을 감안하면 WTO 자체 결정이나 제소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나 실장은 “우리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면서 “양국 기업들과 글로벌 공급사슬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되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해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