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최근 통과된 전자문서·전자거래기본법(이하 전자문서법) 개정으로 인해 산업 현장에 불어닥칠 영향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예전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이 가능한 시기여서 업무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전자문서법 통과의 의미와 이후 전망에 대해 일선 현장에서 느낀 경험 및 고민을 바탕으로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고자 한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10여년 동안 업무 페이퍼리스화에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초창기에는 창구에서 전표를 스캔해 디지털로 변환했다. 최근에는 생성 단계에서부터 전자문서로 작성해 원천적으로 종이 발생을 줄이고 있다.
물론 페이퍼리스 적용이 안 된 업무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전자문서로 대체될 것이다. 금융권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페이퍼리스 환경 구축을 위해선 여전히 개선해야 할 일이 널려 있다. 업무를 위한 각종 정보시스템을 도입·사용해도 관행으로 종이문서를 이중 보관하고, 기업 외부로 문서를 전달할 때는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어느 산업계에서는 전자문서 법적 효력의 모호함을 이유로 전자문서 도입을 꺼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다른 산업계에선 관련법에 명시한 '서면'을 무조건 종이로 해석, 이를 전자문서를 쓰면 안 되는 이유로 삼았다고 한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매우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잘 변화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민간 부문의 저조한 전자문서 활용 역시 이러한 기업의 보수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보수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원인은 전자문서 법적 효력의 모호함, 전자문서의 서면성 해석, 전자문서 관련 공인제도에 대한 불신 등이 기업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자문서법 통과로 기업 현장의 페이퍼리스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 이제는 페이퍼리스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게 아니라 모든 업무를 디지털로 전환해 업무를 완전히 디지털화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종이문서를 안 쓰는 것만으로도 재택근무, 비대면 민원, 영상회의 등 업무 관련 활동을 더욱 원활하게 시작할 수 있다.
여전히 종이를 사용하겠지만 업무의 상당 부분은 디지털로 전환될 것이다. 단순히 전자문서법 하나 통과한 것만으로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위기는 우리에게 기업 현장이 그동안 고수해 온 아날로그 방식의 비효율성을 체감토록 했다. 디지털로 전환한 이후엔 아날로그 방식으로 회귀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관 중인 종이문서 역시 공인전자문서센터에 보관할 경우 폐기가 가능하도록 전자문서법에 명시하고 있다.
기업에서 페이퍼리스 도입이 본격화하면 전자문서 관련 생태계도 활성화할 것이다. 벌써부터 시중 은행들은 보관하고 있는 종이문서의 폐기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관련 사업이 기지개를 켤 것으로 보인다. 페이퍼리스를 주도하는 주요 산업군 또는 대기업의 전자문서 활용 확대는 중견·중소기업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경우 다양한 규모의 기업을 위한 전자문서 서비스가 창출될 것이다. 클라우드·블록체인 등 새로운 정보기술(IT)과 결합한 전자문서 사업 모델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선 사회와 산업 패러다임의 적극 변화가 필요하다. 이미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전자문서 관련 공인제도 등 전자문서 활용을 위한 여건을 보유하고 있다. 전자문서 관련 기술도 글로벌 상위권 수준이다. 이제 법제도까지 마련된 상황에서 페이퍼리스는 더 미룰 이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최신 기술의 도입도 중요하지만 페이퍼리스와 같은 기업 현장 밑바닥에서부터 디지털 전환이 변화를 가속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정한 하나금융그룹 부사장(CICTO) contact.hit@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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