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어왔고 그중에서 식물은 특히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됐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식용작물을 섭취하며 부작용이나 독성을 평가하고 독초나 독약으로 분류하는 등 주의 깊게 연구해왔다. 하지만 근대 이후 인류는 산업 화학물질이라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화학물질, 이러한 화학물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세기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제정되기 시작한 식품, 의약품, 화장품 관련법들은 대부분 화학제품 자체를 규제하는 제도로 제품 단위별 안전성과 유효성을 주목하였을 뿐 화학물질이 전반적으로 환경과 인체에 어떠한 부작용을 미치는지는 그 당시에는 큰 주의를 끌지 못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통해 'DDT' 등 살충제를 무차별 살포하는 것이 생태계는 물론 사람 또한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것이 생활 화학물질이 인체는 물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의 시작점이 됐다. 카슨의 주장은 결국 사실로 밝혀져 미국 정부는 1970년 환경보호국(EPA)을 설립해 화학물질 환경 유출로 인한 피해 예방에 나섰고, 당시 문제가 심각했던 DDT는 환경보호국 설립 후 2년 뒤 사용이 금지됐다. 그 후에도 화학물질에서 치명적인 독성이 발견돼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1995년 유연휘발유가 테트라에틸납이라는 심각한 독성물질을 함유해 환경과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클레어 패터슨이라는 지구과학자의 연구로 미국에서 완전히 퇴출당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다크워터스'라는 영화로 많이 알려진 과불화화합물 과불화옥탄산(PFOA)이 미국에서 사용 금지되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 생활 중에는 치명적인 독성을 알지 못해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있을지도 모르며, 독성이 밝혀질 때까지 그 물질에 노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과 의료기술 발달로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오던 많은 질병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질병들의 빈자리는 환경성 질환이라는 새로운 질병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환경성 질환으로 알려진 아토피 피부염이나 알레르기성 천식, 비염 등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환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아직 구체적인 질병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으며, 최근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는 알레르기, 천식, 선천성 기형,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성조숙증, 피부염, 소아암, 심혈관질환, 신장 질환 등도 화학물질 노출이 원인으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아직도 이러한 영향을 검증해낼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명쾌히 마련돼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제도는 제품별 안전성을 평가해 인허가를 결정토록 하고 있다. 즉 제품 중심의 평가체계다. 따라서 다양한 화학물질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는 우리 일상에 적용하기 쉽지 않으며 영유아, 고령자, 기저 질환자 등 우리 주위 건강취약자에 대한 부가적인 고려도 없다. 동일한 화학물질이 여러 제품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노출되는 현실을 반영하지도 못한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화학제품의 안전성보다는 이로 인한 우리의 건강 영향이지만 현실의 제도는 화학제품 자체의 안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같이 화학물질로 만든 제품은 산업과 경제성장에 많은 도움을 줬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지식과 경험, 측정기술의 부족으로 아직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불편한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 화학제품의 안전성 검증책임은 그 제품을 생산·제조하는 자에게 있지만 그 피해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화학물질이라는 편익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찾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하며, 특히 그 연구의 중심에는 화학제품이 아닌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지구상 모든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주곤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전략본부장 jknam@kitox.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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