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도입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업계 안팎에서 금산분리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민간 자본의 활성화를 이끌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음 달 CVC 보유 허용 여부 결정을 앞두고 총수 일가 계열의 CVC 지분 보유를 금하되 100% 계열사 내부자금으로만 벤처펀드를 조성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21일 관련 부처 및 정치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중심으로 다음 달 중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 허용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이달 초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CVC를 공정거래법이 규정하는 금융업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CVC를 금융업에서 제외해 금융과 산업을 분리하도록 규정한 금산분리 원칙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기 위한 기본 입법 과제인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투자 내역과 자금 대차 관계,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관계 등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CVC 운영 관련 세부 사항은 담겨 있지 않다.
기재부, 공정위,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다음 달로 세부 도입 방안을 늦춰 둔 것 역시 현재 발의된 법안에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서는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을 통한 CVC 도입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중기부는 이미 △일반지주회사가 100% 소유한 완전 자회사 △벤처 투자만 수행하는 전업 창업투자회사 △계열사 내부자금으로만 펀드 조성 등 조건을 갖출 경우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CVC를 전업 창투사로 지정해 보고 체계를 갖추고, 계열사 내부자금만으로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는 경우라면 CVC를 통한 대기업의 자금 유용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CVC를 금융회사로 취급하지 않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CVC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등 세부 사항에 대한 추가 법률 사항에서는 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면서 “중기부가 제시한 의견을 비롯해 기재부, 금융위, 공정위 등으로부터 CVC를 통한 사익 편취를 막을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고 전했다.
총수 일가의 영향력 강화를 막을 방안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중기부 안을 비롯해 피투자 기업에도 경제력 집중과 우회 지원을 막을 수 있는 규제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다. 특히 피투자 기업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대기업의 사내벤처 창업 등이 계열사 부당 지원 등 방식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도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벤처회사에 대한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총수 일가가 사익 편취나 편법 경영 승계에 악용할 우려가 있다”며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소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타인 자본을 통한 지배력 확장과 총수 일가의 부 증식을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단순 계열사 자금만으로 펀드 조성을 허용하는 것은 CVC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3, 4년 사이 세제 혜택 등을 위해 일반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변경한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CVC를 통한 일부 민간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 역시 마찬가지인 만큼 중견·벤처기업 중심으로 CVC 도입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CVC를 통한 대기업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면서도 중견·벤처기업 등 전략 목적의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