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3차 산업혁명 초반의 산업화에 뛰어들어 누적돼 온 산업혁명 성과를 누렸으며, 산업화에 성공했다. 황무지에서 시작해 단기간 내 압축 성장을 하는 사이 우리만의 성공 방정식이 자리 잡았다. 도전형 리더십을 중심으로 무엇이든 이뤄 냈으며,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됐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참고할 선진국 사례가 많았으며, 이를 분석하고 참고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성공 모델은 패스트 팔로어로서 장점을 극대화한 전형이 됐다. 참고할 만한 선진국 모델이 별로 없게 된 이 시점에도 우리 마음속 또는 사회 곳곳에 각인된 성공 방정식이 새로운 생각이나 도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을 주장하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성공 방정식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4차 산업혁명 종합 전략을 수립하는 것에 여전히 소극성을 보인다. 눈에 띄는 몇 개의 퍼즐 조각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고, 그 퍼즐이 맞춰졌을 때의 전체 그림이나 드러나지 않는 조각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선진국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4차 산업혁명은 나라마다 다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맞는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깊게 각인된 성공의 기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사회는 밀접한 생태계 특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 위주의 개선이나 틈새시장을 공략할 때 유효하던 단편 접근 방식으로는 경쟁력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개별 기계나 생산 라인, 공장 범위를 넘어 통합된 전체 체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기반으로 스마트공장이나 자율화 등 세부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섣부른 투자는 자칫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좁은 의미의 스마트화 또는 디지털화로 인식하거나 인공지능(AI), 자율로봇, 3D프린팅, 5세대(5G) 이동통신 등 첨단 기술로만 인식하지 말고 4차 산업혁명 기술 플랫폼 위에 구축되는 사회 혁신으로 봐야 한다. 서비스형 만물인터넷(XaaS)으로 표현되듯이 산업 영역과 그 외 영역 간 구별이 사라진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산업혁명은 누적된 산업 기반 위에서 이뤄지는 또 다른 축적의 과정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가진 자산을 전략 차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의 제조 능력, 특히 공정기술을 4차 산업혁명 플랫폼으로 전환시켜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 과정에서 전략 위상을 갖추는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GVC를 재편하거나 확장할 때 우리 플랫폼 기업들이 GVC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첨단 기술이나 혁신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창업과 플랫폼 기업들이 지속 육성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큰 이슈는 '사람'이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부터 실직을 걱정해야 하는 일반인까지 모두가 이해당사자이다. 창의·혁신·융합형 인재 양성은 물론 보통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두려워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융합 중심, 혁신 의존성, 사람 중심, 생태계 중심 등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성공 방정식의 바탕이 된 지금까지의 교육 체계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창의력 및 정서가 충만하고 환경 변화에 대응 능력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국민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의 주체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음 주에는 마지막 회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부분을 짚어볼 예정이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4차 산업혁명 보고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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