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세계은행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5.2% 감소하리라는 예상치를 발표했다. 특히 선진국 GDP는 약 7.0% 수준의 역성장이 예상되고, 신흥국은 2.5% 정도 감소가 전망됐다. 세계 1인당 GDP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의 낙폭이라는 점에서 암울함을 더한다. 세계화로 인해 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지구촌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연쇄 작용으로 악영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팬데믹이 인류사에 악영향을 미치고 인류 문명의 진보와 번영을 막는 장벽으로만 작동한 것은 아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강타해서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에 1에 이르는 약 2억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흑사병은 피해 규모 집계조차 어려운 대재앙이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해 농촌 인구가 크게 감소한 유럽 각국, 특히 서·남유럽 국가들은 농업 시스템의 기계화와 대규모화를 가속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탈바꿈시켰다. 즉 이렇게 성장한 농업자본을 기반으로 금융자본이 확대됐고, 이를 발판 삼아 과학혁명·상업혁명·산업혁명 등 르네상스가 태동해 오늘날 세계 문명의 중심을 서구 문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20세기 초반에 세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스페인독감 역시 5000만명의 인명 피해를 초래한 대규모 팬데믹이었다. 그러나 공중보건과 의료시스템을 결합하는 계기가 됐고, 이로 인해 인류의 평균수명이 비약 증가하게 돼 오히려 산업 생산성과 과학 기술 축적 역량이 높아지는 현상을 낳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인류 경제 및 사회 시스템에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새로운 혁신과 변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 역시 짙다. 특히 21세기 초부터 개화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즉 지능화 혁명을 가속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비대면 기반의 디지털헬스, 온라인교육, 모바일게임, 원격·재택근무, 온라인 소비 활동 등이 급성장하고 있고 글로벌 가치사슬의 다변화 또는 재편성이 예상되면서 기업들의 공급-생산-유통 시스템에도 대혁신이 예상된다.
이 같은 변화와 혁신의 기반에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특히 인공지능(AI) 중심의 지능정보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인 'AI 기반의 지능화 혁명'을 어떤 국가 또는 기업이 선도하는가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대 변화와 요구 아래 우리 정부는 지능화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 대계의 한 방안으로 지난해 말 'AI 국가전략'을 천명했고, 국가 지능화 선도를 기관 비전으로 삼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역시 이번에 AI 국가전략을 구체화해서 실현하기 위한 'ETRI AI 실행전략'을 마련했다.
ETRI AI 실행전략의 목표는 대한민국 지능화 실현을 위한 'χ+AI' 혁신플랫폼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3대 전략 방향과 7대 실행 전략을 구체화했다. 전략의 핵심 내용은 첫째 AI 서비스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혁신을 이끌어 글로벌 톱3 수준의 지능화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둘째 개방형 플랫폼, AI 인재 양성을 통해 우리 국민·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AI 혁신생태계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업 요구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믿을 만한 AI 활용을 확산하는 일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조류와 맞물려 거대한 지능화 시대로의 전환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 중대한 시기에 ETRI는 AI 실행 전략을 바탕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지능화 동반자들과 함께 부단히 나아가고자 한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joonkim@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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