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64괘와 만난 공부와 삶 이야기!
이 책은 공부공동체 ‘감이당’에서 수년째 동서양의 고전들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들이 ‘주역’ 64괘를 공부와 삶의 현장에서 활용하며 써 내려간 실전 보고서이다. 동양 최고의 고전 중 하나로 손꼽혀 왔지만, 한편으로는 ‘점치는 책’(혹은 미신)으로, 또 한편으로는 ‘신비하고 난해한 책’으로 여겨져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주역’이 오늘날의 삶을 해석하고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 데 더없이 유용한 지도가 될 수 있음을 자신들의 삶 이야기와 더불어 풀어내고 있다.
8인의 필자가 ‘주역’ 64괘 중 각각 8괘씩을 맡아 공부를 하며 길이 막혔을 때 어떤 돌파구를 열었는지, 자녀들과 마음이 어긋나 충돌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괘의 효사를 통해 마음을 잡아갈 수 있었는지, 일이 마음 먹은 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또 어떤 효사의 문구가 길을 열어 주었는지 등등 구체적인 일화와 함께 괘상과 효사에 대한 풀이가 어우러져 있다.
아울러 괘에 대한 64편의 이야기들 외에도 ‘주역’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책의 앞머리에 수록하여 독자들이 ‘주역’에 좀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기본학습 1’에서는 ‘주역’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기본학습 2’에서는 ‘’주역‘의 구성과 기본용어’들을 설명하여, ‘주역’을 접해 보지 않은 독자들도 필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스스로 ‘주역’을 공부하는 입문서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은이의 말
“우린 동양 고전 전공자도 아니고, 일생을 ‘주역’에 바친 재야 학자도 아니다. 단지 ‘주역’의 이치는 쉽고 간단하다는 공자님의 말씀을 믿고 무작정 외우고 쓰면서 가까워졌고, 이치를 파악하면 저절로 활용하게 된다는 말씀을 믿고 활용해 보았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는 64괘 384효라는 촘촘한 ‘주역’의 매트릭스를 통과하는 순간 자신처럼 거친 감각을 가진 사람도 사건을 클로즈업하게 되는 마술이 펼쳐졌다 하고, 누구는 낯선 용어와 고대사회의 껍질을 관통해 들어가니 뜻밖에도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고민과 일상을 만나게 되어 놀랐다 하고, 또 누구는 그 어떤 고전보다 뜻이 깊으면서도 일상의 디테일한 국면까지 파고드는 생활밀착형 텍스트라며 극찬을 했다.
부디 독자들께서도 이 책을 통해 ‘주역’이 특별한 몇몇 지식인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난해한 책이라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신비가들의 세계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삼삼오오 모여 ‘주역’을 읽고 즐기고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서문」 중에서)
본문 중에서
“따라서 ‘주역’에서는 자신의 기질(음 또는 양)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자리(位)에 있는가, 그리고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자가 어떤 기질을 가진 자인가(應),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자는 어떤 기질을 가진 자이며 그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比) 하는 것이 사건 전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사건은 우리가 거기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관계와 배치가 달라지면서 또 다른 사건으로 전환된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된다면, 내가 했다고 잘난 척하거나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며, 사건을 흘려보내지 못한 채 상처로 부둥켜안고 원망과 자책으로 생명에너지를 소모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을 것이다.” (31쪽, 「기본학습 ① _ ‘주역’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중에서)
“만약 태양이 어느 사물에 특별히 집착해서 에너지를 쏟아 붓는 다면 지레 죽고 말 것이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걱정하고 힘들어하셨다면 그걸 보는 나는 그 무게에 짓눌려서 얼마나 힘겨웠을까. 자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 중에서 당신의 일상을 굳건하게 꾸리며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건괘의 효들이 삼효의 건건함에 기반 하여 각자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부모의 굳건한 삶의 태도만큼 자식에게 두고두고 힘이 되는 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태양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태양의 쉼 없음과 굳건함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62~63쪽, 오창희, ‘중천 건, 전전긍긍이 아니라 종일건건’ 중에서)
“나는 이렇게 ‘배운 남자’가 되었고, ‘배운 남자’로서 ‘사회적 실천’을 위한 공부와 일을 하려 애썼다. ‘내 한 몸’과 ‘나의 가족’, 이런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 이렇게 나는 세상일에 헌신했고, 그러면 당연히 ‘내 삶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조금씩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생각하듯 그리 쉽게 좋아지지 않았고, 내 삶도 그렇게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순간 세상이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 위협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그동안 몸담았던 공부와 일의 장에서 튕겨져 나왔다. 갑자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다들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흐릿해졌다.”(67쪽, 안상헌, ‘중지 곤, 안으로 아름다움을 품는 삶’ 중에서)
동인괘의 괘상 또한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천화 동인이니 위에는 하늘이 아래에는 불이 있는 형상이다. 불은 아래에서 위로 타올라서 하늘을 밝게 빛내며 함께 어우러진다. 우리도 다 그렇게 누군가와 어우러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만으로는 동인괘를 이해하기 어렵다. 동인괘에서는 친구를 사귀되 “자기 집안사람끼리”(육이효)만 만나는 걸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대신 “문을 나가서”(초구효) 사귀라고 한다. 곰곰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같은 집안사람이란 꼭 친인척만을 뜻하는 게 아닐 거다. 아이의 예를 들자면, 엄마끼리 친한 집 아이들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귐도 그런 경우다. 앞에서 언급한 동창회나 동호회, 더 나아가 같은 계급, 같은 인종을 기반으로 하는 만남도 마찬가지다. (133쪽, 김주란, ‘천화 동인, 진정한 친구는 문밖에 있다’ 중에서)
“정이천은 위험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정도로만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육삼효와 같은 처신은 물용! 쓰면 안 되는 카드다. 절대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 없다. 우선 나의 헛된 욕심 때문에 어그러진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했다. 아이에게 그간의 미안함을 진심을 다해 전달했다. 진실한 마음이 통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공부로만 배치됐던 하루 일과를 바꿔, 방과 후에는 눈치 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했다. 영화 보기, 소설 읽기, 힙합 듣기 등. 공부 스트레스에서 놓여나니 자신을 혐오하던 열등감이 많이 사라졌고,
나에게 기본으로 배운 사주명리로 ‘썰’을 풀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성적만으로 아이를 평가했던 나에 대한 원망도 많이 풀린 듯하다. 나도 지금은 여유롭게 아이를 바라보게 됐다.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이고 시험제도가 달라질 리도 만무하다.
입시지옥을 부추기는 경쟁과 출세, 성공도식을 따라가던 나의 어리석음을 끊어 내자 찾아온 마음의 평화다. 험난함에 빠지면 묘책이 따로 없다. 물이 차올라 물구덩이가 메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험난함을 통과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232~233쪽, 이성남, ‘중수 감, 물구덩이에 빠졌다면 물이 차도록 기다려라’ 중에서)
상대의 원망이 두려워 입을 닫으면서 사람 좋은 척한다. 상대의 원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엄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이천은 공자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엄을 발휘하려면 “마땅히 먼저 자신의 몸에 엄격히 하라”(威嚴不先行於己위엄불선행어기)고. 그렇다. 내가 상대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은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늬만 엄격하다고 먹히겠는가. 이렇듯 가도를 세우는 리더십은 바로 나의 수행에서 출발한다. 내가 많은 사람들과 결별한 것도 결국 나에게 엄격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다. (281쪽, 박장금, ‘풍화 가인, ‘엄격한 리더’가 필요한 이유‘ 중에서)
사실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설상가상, 첩첩산중 문제가 점점 꼬여 갈 때가 있다는 것을. 참으로 막막한 상황. 그럴 때 사람들이 흔히 내놓는 답이 있다. “때가 되면 다 해결되게 되어 있어!” 딸아이의 문제로 답답해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 준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어디 보편적 상식만으로 해결되는 만만한 장이었던가?
개인의 당면 문제로 돌아오는 순간 혼돈의 도가니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때’라는 시간성을 인식하기도 힘들지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란 ‘식칼 제 자루 깎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답이 있다고 한다. 이 상황을 말해 주는 괘가 바로 뇌수 해(雷水 解)이다. 뇌수 해에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는 방법이 담겨 있다. (296쪽, 이한주, ‘뇌수 해, 높은 성벽 위에 오르면 보이는’ 중에서)
법원 교육명령을 받은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천풍 구 구이의 역할이었다. 어쩌다 법원 교육명령까지 받는 상황이 되었지만, 더 이상 다른 삿된 만남에 유혹되지 않고 진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그 마음을 붙들어 매도록 도와주는 것. 사실 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자신 없다. 굳이 변명하자면,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래서 그 시간을 되돌아볼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와의 짧은 만남 후 그 아이들은 또 다른 많은 천풍 구의 구이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세상엔 좋은 어른들도 많지 않은가. 그 구이들의 짧은 시간들이 합해져 나약한 돼지의 날뛰고 싶은 마음은 모진 세파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랐을지도 모른다. 짧은 만남들이지만 그 만남들의 힘을 믿고 싶다. (322~323쪽, 장현숙, ‘천풍 구, 어느 상담실에서의 짧은 만남들’ 중에서)
려괘에서는 반드시 물리적인 외부, 바깥의 타향을 떠도는 것만이 유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스승과 도반이 없고, 나를 신뢰하는 친구가 없으면 그게 바로 떠돌이의 삶이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차서가 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먼저, 그 길에 대한 믿음과 내가 의지해야 할 현자들의 귀한 가르침에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상구효에서 소를 잃어버리면 흉하다는 게 바로 순종하는 마음과 믿음을 잃어버리면 결국 흉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때 가서 눈물 흘리며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 늘 기억해야 한다. (394~395쪽, 신혜정, ‘화산 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 중에서)
지은이 소개
김주란
십여 년 전쯤, 고미숙 선생님의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를 읽다가 잠들어 있던 공부에 대한 욕망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감이당’에 접속, 지금껏 불교, 명리, ‘주역’을 공부하는 지복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박장금
‘감이당’ 연구원, 살림 멤버, 매니저로 활동 중. 심신이 망가진 후 의역학을 시작으로 동양사상에 매혹되어 ‘주역’까지 마주치게 되었다. 천지를 연결하는 주술사가 되기 위해 동서양을 횡단하며 공부 중이다.
신혜정
대구의 공부공동체 ‘문이정’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역’을 읽고 들뢰즈의 탈주체, 붓다의 보살되기를 훈련하며 공부로 ‘자리이타’(自利利他) 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안상헌
교육학을 공부하여 대략 10년은 교사 교육에 애썼고, 대략 10년은 ‘대학입학사정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에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현재는 ‘주역’과 니체를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오창희
‘주역’을 ‘내 인생의 텍스트’로 삼고 공부하는 중이며, 불경과 니체에도 관심이 많다. ‘감이당’서 강사, 살림 멤버, 공부로 자립하려는 청년들을 후원하는 ‘청년 펀드’ 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이성남
물고기가 물에서 노닐 듯, 대구 공부공동체 ‘문이정’에서 노닐며 공부로 우물의 덕을 긷고 있다. 들뢰즈와 니체, 공자와 붓다에게서 번뇌를 덜어 내며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한주
세속적인, 너무나도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감이당’에서 구도의 공부를 시작했다. ‘주역’을 만나며 인생역전! 지금은 강의도 하고 글도 쓴다. 현재, ‘감이당’과 대구의 ‘수성학당’에서 공부 중이다.
장현숙
서울-창원을 오가며 ‘감이당’에서 공부하고 있다. 문득, 창원에서도 같이 공부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인문고전공간 창이지’를 열었다. 공부하고 강의하며 함께하는 삶에 대해 배우고 있다.
부제: 삶과 만나는 ‘주역’ 이야기
지은이: 김주란, 박장금, 신혜정, 안상헌, 오창희, 이성남, 이한주, 장현숙
사양: 신국판변형 145×210㎜|448쪽|19,000원|북드라망 출판사
전자신문인터넷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