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신용평가사(CB사) 설립에 뛰어들면서 국내 신용평가 시장 재편이 예상된다. 현행 소득과 카드 결제액 등 금융정보로만 이뤄진 개인신용평가 관행에 통신사가 도전장을 내면서 중금리 대출시장 활성화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또 기업 회계정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CB사 진출도 하반기 늘어날 전망이다. CB사는 개인·기업에 대한 신용정보를 수집·제공·관리하고, 금융거래 등을 위해 신용을 평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을 말한다.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가 설립하려는 통신특화 CB사는 비금융전문CB다. 오는 8월 5일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신용조회업이 세분화됐다. 기존에는 신용조회업 뿐이었지만 법 개정 이후에는 개인CB(비금융전문CB 포함), 개인사업자CB, 기업CB(기업등급제공업·기술신용평가업·정보조회업) 등으로 늘어난다.
이번에 신설된 비금융CB는 개인CB의 하나로 통신료·전기·가스·수도 요금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신용을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이통사는 보유한 5000만 가입정보를 기반으로 비금융 정보 기반 신용평가 모형을 만들 예정이다. 이 신용평가 모형에서 통신사 가입정보, 단말기 변경이력, 단말할부정보, 청구정보, 결제정보, 납부정보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이통사는 CB사 설립 후 비금융 정보기반 신용평가 모형을 만들어 금융사나 기업에 본격 판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은행이 개인 대출심사 시 통신특화 CB를 활용하면서 중금리대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이력이 부족해 금융권 대출이 어려웠던 씬파일러도 성실하게 통신비를 납부한 이력을 인정받아 신용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KT는 케이뱅크를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케이뱅크는 KT의 통신정보를 반영한 독자 신용평가시스템을 통해 씬파일러에게 약 510억원 대출을 실행했다.
KT 관계자는 “통신정보 적용 후 연체율 0.1%포인트(P) 감소, 변별력 8% 상승으로 우량고객 추가 발굴이 가능했다”며 “금융소외계층의 제1금융권 기회가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은 이미 이통 3사 정보를 활용한 소액 대출상품을 판매중이다.
우리은행은 소득 정보가 없거나 금융 거래 이력 부족으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웠던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300만원 한도 '우리비상금대출'을 판매하고 있다. 이통 3사가 제공하는 휴대폰 기기 정보, 요금납부 내역, 소액결제 내역 등을 활용한다.
NH농협은행도 통신사 이용 내역을 활용해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한 모바일 전용 '올원 비상금대출'을 운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통신사의 CB사 설립을 두고 마이데이터 주도권 확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CB사 설립을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고 활용해 마이데이터, 마이페이먼트를 넘어 종합지급결제업까지 담당할 역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CB는 크게 수익이 나는 영역은 아니지만 앞으로 데이터 사업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새로운 고객을 찾아내고 향후 혁신서비스를 만드는데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통 3사 뿐 아니라 ICT기업의 CB진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완화된 CB인가요건이 기업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다.
비금융전문CB와 정보조회업(기업CB)은 최소자본금이 5억원이다. 금융회사 출자요건도 따로 없다.
빅데이터 플랫폼 운영기업인 더존비즈온은 금융위로부터 하반기 기업CB(정보조회업) 정식 인가를 받겠다는 계획이다. 이 기업은 이미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한 상태다. 더존비즈온은 비외감기업의 세무회계 정보를 활용한 신용정보 제공 및 신용평가·위험관리 모형을 만들었다.
회계프로그램에 실시간으로 저장되는 회계 빅데이터 등 신용정보를 금융회사 등에 전송하는 신용정보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이와 함께 실시간 회계 데이터를 분석하는 머신러닝 기법의 신용평가 모형 및 위험관리모형을 개발·판매한다.
외감기업과 달리 비외감기업은 재무제표 기반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금융사 문턱을 넘기 어렵다. 더존비즈온은 결제신뢰도, 외상매출 회수기일 안정성, 거래처 이탈여부, 활동성 등 기존 재무제표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신용평가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에는 각종 공과금, 4대보험, 직원급여, 수도료·전기료 납부정보도 들어간다.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기존 신용평가모델로는 비외감기업을 평가하기 어려운 점에 착안했다”며 “금융권이 이러한 회계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비외감 중소기업의 금융접근성 제고,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핀테크기업 핀크는 통신사 가입 정보를 활용한 대안 신용평가 서비스를 제공중이다. 휴대폰 이용 정보를 통신점수로 산출한 후 금융기관에 제공해 신용등급과 함께 대출심사에 반영하도록 한 게 특징이다. 통신사 가입, 요금, 이용 등의 정보에 따라 결정된다. 점수별 최대 1.0%의 대출금리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향후 개인 간(P2P)금융기업도 CB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다수 P2P금융기업은 여신 심사 때 비금융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나 행동양식을 전통적인 신용평가 방식의 보조자료로 활용한다.
한 P2P기업 관계자는 “P2P기업들은 수년간 중신용자를 타깃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아왔다”며 “기존 대형 신용평가사가 크게 주목하지 않던 소상공인 또는 중신용자에 특화된 CB설립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혜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