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스탠드형 에어컨' 에너지소비효율등급 기준을 하향 조정한다. 지난 2018년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판되고 있는 스탠드형 에어컨 가운데 1등급 제품이 하나도 없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인데도 낮은 등급이 표기돼 소비자 혼란을 야기하는 문제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업계는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내년 에어컨 신제품 출시 전에 신규 등급 기준을 확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또 새로운 등급 기준은 업체 간 기술력을 구분할 수 있는 변별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14일 정부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전기냉방기(에어컨) 에너지소비효율등급' 기준을 바꾸기 위한 규제 심의에 들어간다. 심의 이후 행정예고를 통해 새 에어컨 에너지소비효율등급 기준안을 제시할 방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비용편익 분석 등을 거치게 된다.
이번 규제 심의 초점은 에어컨 에너지효율 1등급 기준을 완화하는 데 맞춰졌다. 2018년 10월 개정 당시 지나치게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스탠드형 제품 가운데 1등급이 자취를 감췄다. 한국에너지공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삼성전자 1개 제품(1만와트형)이 1등급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 출시는 하지 않은 제품이다. 2년이 다 되도록 1등급 제품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볼 때 얼마나 기준이 높은지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에너지효율 2~3등급 제품이 1등급 역할을 하는 형편이다. 1등급 가전 구매금액을 환급해 주는 으뜸효율 제도에서도 스탠드형 에어컨은 예외로 3등급까지 환급해 준다. 뛰어난 에너지효율을 갖췄으면서도 자칫 소비자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스탠드형 에어컨은 3등급이 사실상 1등급이나 마찬가지”라면서 “현행 기준은 지나치게 엄격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전업계는 정부의 에너지효율 등급 기준 완화를 환영하면서도 새로운 등급 기준이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우선 1~3등급 제품이 뚜렷이 구분될 수 있도록 변별력을 갖춘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모든 제품이 1등급 기준에 미달하지만 개정 후 다수 제품이 1등급에 포함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효율 가전 개발을 유도한다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변별력이 필수다.
신제품 출시 일정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에어컨은 통상 연초에 출시해 3분기까지 팔고, 4분기에 다음 시즌 제품을 준비하는 사이클을 거친다. 이에 따라 10월 이전에 새 등급 기준을 확정해야 이 기준을 신제품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업계 논의 과정에서 새 등급 기준 적용 시점을 3월로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업체가 내년 3월에 바뀐 기준안을 적용하자는 최초 추진안에 반발했다”면서 “그렇게 되면 제조사들은 1월에 신제품을 내놓고 2개월 만에 또 신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3등급이 사실상 1등급"…소비자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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