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호텔업계가 오랜 불문율까지 깨며 생존 전략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특급호텔마저 국내 대실 개념인 '데이유즈(Day Use)' 상품이나 홈쇼핑 판매 등 지금까지 터부시해온 빗장들을 조금씩 풀며 타개책 찾기에 나섰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주중에 투숙 없이 객실과 수영장 등을 사용할 수 있는 '하프 데이 스페셜'을 처음 선보였다. 오전 8시부터 최대 12시간 동안 객실에 머무르며 피트니스 클럽 등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당초 한시적으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고객 호응에 8월 말까지 기간을 늘렸다.
밀레니얼 힐튼도 데이유즈 프로모션을 내놨다. 숙박 대신 8시간 동안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피트니스·수영장·사우나도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과거 그랜드 하얏트 서울 등 일부 특급호텔에서 비즈니스 고객을 대상으로 데이유즈 상품을 선보인 적 있으나 지금처럼 일반 고객까지 확대한 것은 이례적이다.
해외에서는 데이유즈 상품이 보편화됐지만 국내서는 대실이라고 하면 모텔을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 때문에 특급호텔에서 극도로 꺼려왔다. 객실 이용률을 높여 수익을 높일 수 있지만 굳이 이미지 하락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호텔 경영이 벼랑 끝에 몰리면서 불문율도 깨졌다. 여행 수요가 회복된 5월에도 5성급 호텔의 평균객실가동률(OCC)은 28.4%에 그쳤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의 경우 투숙객에 63.3%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고객이 사라지면서 명분보다는 실리는 택하는 호텔이 늘었다.
롯데나 신라, 신세계조선 등 국내 호텔들도 현재로선 데이유즈 패키지를 출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공실 여파가 지속될 경우 낮에 빈 객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실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미 '오후 3시 체크인, 낮 12시 체크아웃'이 일반적이던 숙박 정책도 객실 운용에 여유가 생기면서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체크인하고 24시간 후 체크아웃할 수 있는 상품이 잇달아 출시됐다.
호텔 라운지도 마찬가지다. 시내 특급호텔의 경우 통상 투숙객 전용 라운지에 12세 미만 어린이 입장을 제한해왔다. 주요 고객인 해외 비즈니스 고객의 편안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외국인 발길이 끊기면서 가족 단위 내국인 투숙객을 잡기 위해 오랜 금기도 깼다. 롯데호텔서울 이그제큐티브 타워는 최근 전용 라운지 '르 살롱'의 연령 제한을 한시적으로 없앴다. 호텔 라운지 불문율인 어린이 이용 제한의 빗장을 풀면서 가족 단위 고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몸값을 낮추고 홈쇼핑 패키지 상품도 잇달아 내놨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지난 5월 객실 특가 상품을 GS홈쇼핑을 통해 판매했다. 시내 5성급 호텔이 홈쇼핑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롯데호텔과 신세계조선호텔도 비즈니스호텔 숙박권을 홈쇼핑으로 판매해 큰 효과를 거뒀다. 한 번 물꼬가 터지자 홈쇼핑 판매를 꺼려오던 다른 특급호텔들도 홈쇼핑을 통해 내국인 고객 잡기에 열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브랜드 가치를 위해 지켜왔던 특급호텔의 불문율도 사상 초유의 코로나 한파 앞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면서 “자존심을 낮추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나서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