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암호화폐인 커스터디 서비스의 도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암호화폐 사업에 신중론을 견지해 온 은행권 내부 기조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제도화와 가상자산 양성화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은행과 블록체인업계 간 물밑 협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이 최근 커스터디 서비스 도입을 위해 적극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수의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들은 “암호화폐 과세안 발표와 미국 은행규제감독 기관인 통화감독국(OCC)의 공식 발표 후 국내 은행권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기획재정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내년 10월부터 암호화폐 거래로 25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투자자를 대상으로 양도차익 20%를 세금으로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달 미국 OCC는 암호화폐를 전자 형태 자산으로 간주하고 은행의 수탁자산 대상에 포함한다고 공표했다. 미국 내 대부분 은행이 해당된다. 금융시장 디지털화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 지지부진하던 은행권 커스터디 사업 협의가 요즘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전까진 '특정금융 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령 발표 후에 얘기하자는 반응이 다수였지만 지금은 실질적인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과 업계는 일련의 두 가지 조치를 통해 암호화폐가 규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동안 암호화폐는 불명확한 제도에 따른 사업 불확실성이 리스크로 지적됐다. 불시 규제로 사업이 좌초될 위험이 상존했다. 특히 신사업에 보수적인 은행권으로서는 암호화폐 사업화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특금법 시행령 발표 시점이 임박한 것도 암호화폐 업계에 희소식이다. 시행령 공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에선 이르면 이달 중, 늦어도 다음 달에는 공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OCC 결정, 암호화폐 과세안 발표 후 암호화폐 사업이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다. 고질적이던 규제의 불확실 리스크를 해소하는 국면”이라면서 “내부적으로도 커스터디 사업 논의에 탄력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지금까지 물밑에서 진행해 온 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공식화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커스터디 사업 방향을 공개한 데 이어 최근엔 KB국민은행이 해시드, 해치랩스, 컴벌랜드코리아와 기술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암호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역시 블록체인 전담 조직을 가동했다.
일부 시중은행에선 올해 안에 암호화폐 커스터디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 3월 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시중은행 다수가 커스터디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복수의 시중은행이 연내 커스터디 서비스 출시를 계획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정에서 차이는 있지만 다른 은행 역시 늦어도 내년 3월 이전에 서비스를 공개할 것”이라면서 “특금법 시행 이전에 서비스를 출시해야 기존 사업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내년 9월까지 6개월 동안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유예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표】암호화폐 산업 주요 일지
<자료:업계 취합>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