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배터리)는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확실한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제2의 반도체'라는 헌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부터 착실히 실력을 쌓아 이제는 전지사업 연매출 10조원을 바라보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3사가 국내 산업계에 남긴 공은 적지 않다. 구본무 LG 회장이 영국에 출장을 갔다가 여러 번 반복해 쓸 수 있는 이차전지 표본을 들고 와 연구하도록 지시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배터리 산업은 이제 성장기를 넘어 변곡점에 서 있다.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배터리 자체 생산을 위해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 변곡점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배터리 산업계가 재편될 것이다. 이 시기에 방향키를 잃으면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되새겨야 할 말은 바로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일수록 튼튼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지고,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국내 업체들 간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들의 핵심 소재 내재화 비율은 40% 수준이다. 배터리 3사는 이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내 공급망 체계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양극재 업체인 에코프로비엠, 포스코케미칼, 엘앤에프, 코스모신소재가 통상 양극재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1~2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전기차 주행거리 등 원하는 성능을 내기 위해 고객사 테스트 등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터리 업체와 협업해 제품을 생산하면 전기차에 탑재하는 기간을 반년 가까이 단축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산업이 어려워져도 그 근간인 핵심 소재·부품은 지켰듯 우리도 그래야 한다. 물론 소재 내재화는 업체들의 선택이지만, 더욱 치열해질 글로벌 전쟁터에서 산업 생태계라는 든든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다. 뿌리가 흔들리면 나무가 쓰러지는 법이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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