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임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풀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아베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 중에서도 한국에 대해 강경한 자세로 일관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극우성향의 정책을 추진했던 것도 양국 관계개선의 걸림돌이었다.
청와대는 새로운 일본 총리 및 내각과 우호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아베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입장을 내고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로서 여러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고, 특히 오랫동안 한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온 아베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 발표를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병으로 사임한 아베 총리의 빠른 쾌유도 기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새로 선출될 일본 총리 및 새 내각과도 한일 간 우호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계속해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아베 정부와 마찰을 계속해왔다. 가장 극명했던 순간은 2018년 일본 도쿄 총리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오찬 때였다.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케이크를 선물로 냈는데, 문 대통령이 '단 것을 잘 못 먹는다'며 사양한 일이다.
한일 두 나라에는 풀어야 할 현안이 쌓여있다. 강제징용 판결 및 전범기업 재산 몰수, 무역분쟁,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 양국이 일시에 타결하기 힘든 문제가 많다.
일본은 아베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이 집권여당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대다수는 북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남북관계 회복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와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후임 총리로 거론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도 한국을 향한 인식에는 아베 총리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친아베파 정치인이다. 요시히데 관방장관는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파에 속한다. 아베 총리의 당 내 라이벌인 시게루 전 간사장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를 인정하면서도 한일합병을 '합법'으로 표현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한일관계가 단기간에 극적으로 변화하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자민당 내 다른 인사가 총리를 맡는다 해도 한국에 대한 기존 입장을 갑자기 바꾸기 어려운 만큼 한일관계에도 별다른 영향을 못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운 총리가 취임하는 것을 계기로 양국이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도 많다. 새로운 정권은 이전 정권에서의 외교정책을 점검하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가능한 우호적으로 가져가려는 경향이 있는 만큼 한일관계도 나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본 자민당의 후임 총리 인선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선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남·북·미 대화와 코로나19 선방 등으로 높아진 우리 외교라인의 위상과 협상력이 얼마나 발휘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